나이 예순을 바라보면서 황혼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는 때가 종종 있는데, 이런 감정이 몰려오면 누구나 견디기가 힘들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휴먼워커human worker들과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다. 명년에 은퇴하시는 분이 무심결에 한 말이다. “은퇴하면 뭐 하고 사나.”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우리 모두의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른 누군가 말했다. “백세를 산다는데, 앞으로 사십년은 뭐 먹고 사나요.” 밥 먹는 속도가 느려졌고, 마치 그 날이 온 것처럼 우리들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한 때 우울증을 겪었다는 분이 말했다. “고령화 시대에 인류의 무서운 적은 황혼 우울증이라는데, 이제는 남 이야기 같지 않아요.” 우리는 즐거워야 할 식탁에 황혼우울이란 손님을 미리 모셔 들이고 있었고, 약속이나 한 듯이 낯선 손님을 환영했다. 누구보다도 인간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온 우리들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서둘러 화제를 전환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자,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하고 편해졌다.
맞은편에 앉은 분이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며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나이 먹으면 친구들도 하나 둘씩 사라지는데, 황혼우울을 마지막까지 친구로 두면 되지 않습니까.” 좌중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그 순간 나도 마음속에서도 떠오르는 소리를 말했다. “내일 일은 내일로 맡기고 지금은 밥이나 맛있게 먹읍시다.” 가장 연장자가 자신의 인생철학이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인생은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 있는 거야.”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고, 이구동성으로 이것이 진정한 “식사테라피”였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삶은 외부 혹은 내부의 자극으로 수없이 많은 낯선 감정들과의 만남이다. 감정정화의 제 일 수칙은 어떤 감정이든지 다 이유가 있어서 나를 찾아온 것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거다. 시간을 믿고 기다리라. 거부된 감정은 나를 거부하지만, 받아들인 감정은 나를 수용한다. 그리고 마음은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인생지침인 “마음소리”를 선물로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