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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Jun 05. 2020

술은 제정신이 아닌, 제정신으로 돌아가게 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술!

문예창작과 대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다. 학생은 소설공부를 한 지 1년도 안되어 백일장과 공모전에 참여하여 적지 않은 수상경력이 있는 타고난 소설가이다. 학생은 소설가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도 능력을 돋보였다.

학생은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영화감독의 꿈도 가지고 있다.


나는 학생이 자기의 소망을 되돌아보게 하려고 원하는 대학에 가면 가장 기대되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학생은 망설일 것도 없이 즉답했다. “마음껏 술을 마실 거예요.” 나는 놀래지 않았고 그냥 웃음이 나왔다.

학생은 카페대신에 호프집에 간다고 했고, 김밥나라 대신에 싸구려 소주 집에 간다고 했고, 도시락 대신에 텀블러에 술은 넣고 안주를 가져온다고 했다.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을 해서 학생의 말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물었다. “술이 좋은 이유가 뭐니?” 학생은 망설일 것도 없이 말했다. “몽롱해서 좋아요.” 몽롱해서 좋다는 것이다. 단지 몽롱해서. 기분이 아주 나쁘지도 않고 아주 좋지도 않고 내가 내 기분을 조절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웃는 사람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과 함께 웃는 일이 어렵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글을 쓰지 않아도 글 안에 있는 것 같아 좋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소설 속의 비극의 주인공도 되고 희극의 주인공도 되고, 단역배우처럼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투명인간도 될 수 있으니 좋다는 것이다.      


 세상은 왜 이처럼 제 정신으로는 살 수 없는 곳이 됐는지 세상아 너는 아는가? 세상은 말할 것이다. “그게 나야. 너희들이 나에게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나도 너희들에게 제 정신이 아니야. 그리고 꼭 제 정신이여야 할 이유가 뭘까?”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은 사람이 될 것이다. 무슨 선문답 같기도 하다. 선문답은 선문답으로 풀어야 한다.  “맞다. 제 정신이 아닌 때가 바로 제 정신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제 정신으로 돌아와서 안 해도 될 걱정을 하고, 아직 오지도 않았고 절대 오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하고, 자아에 속아 꼭 필요하지도 않은 대책을 세우고 지쳐 괴로워한다. 제 정신이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만일 세상에 술 또는 술 같은 것이 없다면, 제 명대로 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술을 먹지 않는다고 절제된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당신은 술을 대체한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알코올중독의 남편과 일중독의 아내가 있었다. 남편이 술에 빠져 얻는 쾌감이나, 아내가 일에 빠져 얻는 쾌감은 같은 것이다. 남편이 술이 없어 허전해지는 것이나, 아내가 일이 없어 허전해 지는 것도 같다. 심리학적으로 남편은 사회의 부적응자로 퇴행하는 것이고, 아내는 사회에 성공적으로 전진하고 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두 분은 똑같이 제정신인 상태와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오가며 삶에 집착하며 괴로워한다. 만일 두 분이 자신의 삶에 대한 각성 없이 살아 온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두 분은 즐겁지 않은 인생을 산 실패자가 될 것이다. 둘이 놓친 것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은 술에 취해있을 때에 얻는 제 정신이 아닌 짜릿한 상태를, 술 말고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그곳으로 돌아가 쉼을 얻는다. 아내 역시 일에 빠졌을 때에 제 정신이 아닌 짜릿한 상태를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그리로 돌아가 쉼을 얻는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황홀하게 하거나 상승하게 하는 것은 영혼의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하다. 종교는 공적으로 그 기능을 수행한다.예수는 공적 사역을 하기 전에 첫번째 기적으로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 무속에서부터 고등종교에 이르기까지 술은 종교적 연합의 상징으로 쓴다. 제사상에 술을 따르거나, 묘지에 술을 뿌리는 행위, 기독교 성만찬에서 포도주를 거룩한 피로 여기는 이유는 술은 변화와 본래적인 것으로 회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학생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돌아가 건져 올릴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자신들도 잘 하지 못하면서, 학생에게 다른 건강한 방법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건강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불확실하고, 자기만의 것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찾는다. 술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여 무의식에 있는 것들을 보다 쉽게 느끼게 한다. 그러나  중독은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단지 거기서만 살게 하는 것으로 악성 퇴행이다.


술 말고도 무의식으로 내려가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술을 안 마셔도 술 마셨을 때의 기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법으로 마음이 평화스러워지는 연습을 권한다. 생각을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하나의 단어나 문장만을 아주 작은 소리로 되풀이 해본다. 입술로 중얼거려야 잡념이 잡히고, 나중에는 단어나 문장도 없이 마음의 깊은 바다에 가 닿는 경험을 할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 일어나는 황홀한 경험이지만, 그런 경험들은 각자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성장시킨다. 평화로운 마음은 그저 얻는 것이 아니라, 연습의 산물이다. 연습이 부족한 사람을 술의 유혹을 더 많이 받는다.  


학생은 지금 지쳐있다. 글감을 생각해내고 소설의 구성을 짜고 글을 써내려가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작업이다. 대학입시를 이렇게 준비하는 것은 일종의 수행이다. 한국의 고등학생은 스스로 원하지 않는 고독한 수행자가 다. 학생이 술파티를 기대하는 것은 입시준비 소설을 쓰며 길어 올린 마음의 보석들을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이다. 술은 내 것을 아낌없이 상대와 즐겁게 나게 한다. 술은 둘이 하나 되게 하고 하나가 둘이 되게 함으로,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합하 즐거움을 준다.  


과음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물어 일체감을 느끼게 함으로, 신화에서 나와야 할 인간이 신화 속에 빠지게 한다. 술중독은 영혼이 육체의 한계에 갇힌 것을 부정해 버리는 것이고, 신화에서 태어난 인간이 신화 밖에서 살아야 할 존재임을 잠깐 잊게 한다. 신화와 동일시되는 즐거움은 삶의 양념 정도면 충분하다. 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했고, 인류의 역사를 뒤에서 훔쳐봤고, 인류의 종말에 함께 술도 종말할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새롭게 재창조 되는 날, 술도 거기에 맞게 새롭게 재창조될 것이다.             



가나심리치료연구소  박성만 교수

 http://www.gana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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