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는 발코니 화분에 꽃씨를 뿌리겠다고 다짐한 것은 코로나19때문이었다. 외출에 제한을 받으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왜 딱히 꽃씨를 뿌리겠다고 다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피곤한 세상을 피해서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냥 "이뻐서"이다.
가끔 만나는 후배에게 나의 다짐을 말했더니 그게 나이가 들어 마음이 허해서라고 했다. 그런 점도 있기도 하다. 나이가 들을 때마다 외롭고 허한 것은 피할 수 없고, 허한 그 곳은 채울 것을 찾는다. 올 봄에는 그곳을 꽃으로 채우고 싶었던 거다.
후배는 발코니에 꽃씨를 뿌려야 꽃을 보기 힘들다며, 꽃 화분을 사다가 발코니를 꾸며보라고 했다. 자기도 요즘 퇴근 길에 화원에 들러 꽃 화분을 사와 발코니를 장식하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했다. 없던 습관이 생겼는데, 잘 생각해 보면 나이든 탓이라고 했다.
나는 씨앗에서부터 시작되는 꽃의 역사를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여기저기 나뒹굴던 화분을 모아 관상용 양귀비, 백일홍, 채송화를 파종했다. 양귀비와 채송화를 파종할 때는 이렇게 작은 씨앗에서 과연 싹이 생길지 의심을 했다. 나는 매일 아침이면 발코니로 나가 사랑의 눈빚으로 "굿모닝"했고, 유아에게 수유하듯 물을 주었고, 이유식을 먹이듯 비료도 주었다.
그랬더니 양귀비는 6센티 정도 자라다가 줄기에 힘이 없어 전쟁터에서 전사한 병사처럼 화분 안에서 서로 얽혀 쓰러졌다. 검색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양귀비는 실내에서 꽃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고 무더운 여름 이전에 꽃을 보는 방법을 권했지만, 그것도 실내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2달 조금 더 지난 어느 날, 씩씩하게 쑥쑥 자라준 백일홍에 여러 색의 꽃망울이 생겼다. 꽃망울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 꽃빛을 내며 만개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채송화에서 첫 꽃이 폈다. 채송화는 내가 좋아하는 꽃으로 몇 년 전부터 꽃 화분을 만들어야지 하다가, 금년 봄에야 꿈을 이루었다.
만개한 채송화를 보는 순간 맑은 햇빛이 쏟아지던 아주 먼 옛날이 떠올랐다. 그 때에 초등학교 교정화단에는 채송화가 가득 폈다. 함께 놀던 친구들,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선생님, 운동장 모래밭 위의 철봉과 뺑뺑이가 기억나,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잠깐 돌아가는 황홀한 체험을 다 했다.
창조주가 이 땅에 꽃을 피게 한 것은 너희들도 이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가만히 보니 꽃빛에 비친 내 모습은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너희들은 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