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것을 찾느라 시간만 낭비할 수는 없잖아요.
상상력은 풍부하지만 학문적 논리성은 부족한 사회과학 박사과정 학 생이 있었다. 그가 퉁명스럽게 한 말이다. “박사논문 초고를 지도 교수에게 제출했더니,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 더군요.” 지도 교수는 그의 글에 학문성은 없고, 상상력만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은 고민했다. 딱딱한 글을 찾아 그것이 무슨 경전이라도 되는 것 처럼 인용해서 각주를 다는 일은 답답해서 못하겠다. 어떻게 하면 좋 을까? 그때 마음이 쑥 던졌다.
“쓰지 마. 상상력으로 살아.” 학생은 잠시 속이 시원했다가 다시 고민했다. “학위가 필요한데, 수료만 하고 논문을 안 쓰면 아깝잖아요.”
마음이 말했다.
“그럼 써. 학문성을 키워.”
학생은 헷갈렸다.
“도대체 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마음도 헷갈렸다.
“쓰고 싶은 거야, 쓰기 싫은 거야.”
신은 인간을 자신의 인형처럼 두지 않고자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자기 실현은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나는 최선의 것을 찾느라 아까운 청춘을 다 보낸 사람들 을 알고 있다.
박성만 [너의 화는 당연하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