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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May 05. 2023

죽음을 생각하지 말라

생각하지 않는 것과 억압하는 것의 차이

제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몇 년 전, 동네 뒷산을 오르다가 곱게 물든 낙엽에 반했다. 지나간 여름, 태풍 링링이 쓰러뜨린 나무에 걸터앉아 낙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맞은편에서 개미 한 마리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기어 오고 있었다. 개미는 나를 정면에서 보더니 ‘으악’소리를 내고 뒤로 발랑 자빠졌다. 그리고 앞발로 살살 빌면서 물었다.


“오, 위대하신 신이시여. 저는 개미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수행 개미입니다. 오늘 드디어 존재 자체이신 위대하신 신을 만났습니다. 제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야 간단하지. 자, 네 아래를 내려다봐. 뭐가 보이나?”

“그야 흙이 보이지요. 이 지긋지긋한 흙. 나는 이 흙과 일생을 싸우면서 보내고 있다고요.”

“흙과 싸운다고? 너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 흙은 너야. 그런데 너는 너 자신과 싸우면서 수행하고 있었던 거야.”

 

영혼은 어디로 가나?

수행의 관록이 붙은 개미는 내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하나의 큰 문제가 해결됐고,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면 제 영혼은 어디로 가나요?”

나는 개미 따위가 제 영혼까지 논한다는 것에 깔깔거리고 웃었으나 개미의 진지한 표정에 나도 그만 진지해졌다. 나에게 나의 영혼이 중요하듯이 개미도 제 영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 이번에도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것도 간단해. 너는 네 영혼이 보이느냐?”

“영혼이 보이다뇨?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영혼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는 거야.”

 

죽음을 생각하지 말라

개미는 삶의 본질에 대한 규명에 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개미는 “그곳이 어딘데요?”라고 물으려는 것 같았으나,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내 길을 갔다. 뒤돌아보니 개미도 제 길을 가고 있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듯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깨달음이 답이다.” 싯다르타는 깨달음의 욕망도 버리는 것이 참된 깨달음이라고 했다. 내가 죽음 블로그를 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죽음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죽음이 두려워 죽음 이야기를 억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나심리치료연구소

죽음 및 일반 심리상담  박 성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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