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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Aug 15. 2024

감정은 사라지고 말은 남는다

그 ‘火’, 일단 거두시지요

만나면 투닥거리는 게 일인 20년 지기 친구녀석이 있다.   


이따금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다투기도 했지만, 늘 그렇게 서로의 곁을 지켜주던 친구였다.   


일 년 전 어느 날, 그 친구가 오해로 나에게 모진 폭언과 날 선 감정을 드러낸 적 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정신적 구타에 심하게 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안부 전화를 달포에 한 번씩은 나누던 사이였는데 그 뒤로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미안한 마음에, 난 여전히 상한 마음에 서로를 멀리했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친구는 신생아용 선물링크를 내게 보내왔다. 그 친구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제법 비싼 가격대의 물품이었다.      


치기어린 시절부터 서툰 감정 표현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종종 싸워왔지만 이내 시간의 힘으로 관계를 회복해 왔던바, 친구 나름의 화해 방식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불알잡기 식 친구 놀이를 하기에 이미 우리는 컸고,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하는 성인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땐 제대로 된 대화 없이 서로의 표정만 봐도 기분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회관계, 커리어, 가정 등 서로의 영역이 생겨버렸기에 진정성 어린 사과 없이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할 수 있지만 이미 뱉어진 말은 구체적인 형체를 갖는다. 그 무형의 형체는 충분히 긴 시간이 지날 때까지 상대의 가슴에 남아 물리적인 힘을 행사한다.      


한마디의 말이 두고두고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파 생채기를 낼 수도 있는 법이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 표현을 조심해야하는 이유다.     


상대에 대한 격려, 칭찬, 응원의 말은 많이 할수록, 직접 전달할수록 좋다. 긍정의 기운이 구체적인 힘을 발휘해 상대에게 더 큰 용기와 에너지를 두고두고 북돋워줄테니까.     





반면, 상대에 대한 성토와 미움, 날 선 감정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다. 그 순간 솟구친 감정의 근원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불필요하게 사회의 ‘적’을 내 손으로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위 에피소드는 내가 피해자가 된 상황이지만, 나 역시 부지불식간 불필요한 언행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에 어린 중생은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부모와 아내에게, 그리고 자식이 가장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라는 이유로 너무 편하게 대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본인 스스로 반성해보는 대목이다.      


가족이기에, 허물없이 지내는 가까운 사이이기에 나의 이 서툰 감정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고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을 실었던 ‘말’은 온전한 형태로 남는다.      


치기 어린 감정은 꾹 참아보자. 세 번 생각하고 한번 더 고민하고 내뱉어보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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