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름대로 내리는 정의
제 생각에 저는 금수저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나갔다 오다가, 문득 버스에서 든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현악기를 배웠습니다.
물론 악기를 배우고, 그런 취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집이 잘 살아서, 그럴 돈이 집에 있어서 당신은 금수저다'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악기를 배울 수 있었던 이유는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제가 그런 호사라면 호사, 좋은 경험이라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으셨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제가 처음 악기를 배우던 때만 해도,
우리는 서울 어느 동네 골목길 조그마한 집에
(연립주택이라고 하나요? 여러 가구가 같이 사는)
세 들어서 살던 때였고, 악기도 아는 사람이 물려준 악기로 시작한 거였고,
우리 동네에 이런 악기를 배우는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이웃이 봤을 때는 저런 집에 무슨 사치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법했을 겁니다.
이제는 나이가 한참 더 들어서, 취미 삼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번씩 켜보는 악기이지만,
엊그제 송진을 사러 악기점이 들러보니, 이것저것 여간 돈이 드는 게 아닌 겁니다!
송진도 급(!)이 여러 단계, 악기 줄 한 세트에 월급 몇 분의 일이 나갈 수도 있고,
새로운 소재의 멋들어진 악기 케이스는 정말 월급을 거의 다 줘야만 사겠더라고요.
손을 덜덜 떨며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는 이제 돈을 버는데도, 돈이 있는데도, 이거 하나 사기가 이리 돈이 아까운데
(결국 싼 걸로 사 왔지 말입니다!)
내가 한참 배우던 시절에 우리 부모님은 아까워하지 않고 나를 지원해주셨구나'
실제로 악기는 한 예일 뿐이고,
저는 늘 우리 집 형편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받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부모님 본인이 하고 싶은, 사고 싶은 것이 없으셔서도, 생활비며 이런저런 데에 쓰고 남는 돈이 넉넉해서
저를 악기뿐 아니라 이런저런 것을 시켜주신 것이 절대로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저를 위해서 아낌없이 내어주신 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쉬이 내어줄 수 있는 정도보다도 훨씬 더 컸던 것을,
지금에서야 정말 체감한 겁니다.
내가 아이로 학생으로 있었을 때는 막연히 고맙기나 했지
정말 그게 어떤 정도의 가치이고 비중인지를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막연히 가슴이 먹먹하고, 부모님께 고맙고,
'내가 정말 금수저였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빽'이라는 것이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물질적인 무언가를 꼭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닌,
'네가 너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우리가 널 등 밀어주마'라는 든든함.
물론 저는 그런 부모님을 만나서 운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금수저입니다'라는 식으로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표현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무슨 수저 든 간에,
열심히 번 돈으로 사서, 따숩게 지은 밥을,
그 수저로 열심히 퍼먹여서 우리를 길러주신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금수저' (혹은 '은수저') 에 대한 인식과 생각들을 요즈음 여기저기서 자주 접합니다.
금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남보다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칭하는 표현으로 많이 쓰이지요,
영어 표현으로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빌려온 표현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분상승의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우리나라에서, 불평등을 설명하는 원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생각인데요.
사회과학자로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접하는 표현이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거나 받아들여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곁들여 써본
제 생각의 한 조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