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한가?
SNS나 커뮤니티 등 어디에서나 현재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체로 아니라고 답한다. 왜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불가능해?라고 묻는다면 보통 이런 얘기를 한다.
"이전에 했던 여성 혐오적 행동이 있다."
"결국 범죄를 저지른다. 다 가짜 페미니스트이다."
"백인이 흑인 인권 운동에 왈가왈부할 수 있냐?"
"자본가가 노동자 편드는 것 봤냐?"
"남성이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이다."
등등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남페미는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아니,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라는 명제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성'만'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가 된다. 곧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전유물이며 남성은 가질 수 없는 운동(movement)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곧 당사자주의로 연결된다.
당사자주의란?
-당사자주의란 당사자만이 해당 문제를 해결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즉 장애인 인권 운동은 장애인이, 흑인 인권 운동은 흑인만이, 여성 인권 운동은 여성만이 참여하고 실행할 수 있다.
당사자주의는 여러모로 위험한 논리이다.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성을 갖고 있지 않을 때가 많으며 이것은 곧 당사자주의의 허점을 드러낸다.
당신은 여성이다.
당신은 여성이다. 서울 또는 수도권에 살고 있고 4년제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했다. 당신은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이랬을 때 당신은 여성주의에서 당사자인가? 아니다. 페미니즘이 여성주의이지만, 여성성은 온갖 문제에 얽혀있다. 성매매, 미디어, 공장노동, 임금, 성범죄, 유리천장, 임신&출산 등등 무궁무진하다.
당신이 성판매 여성이 아니라면, 여성 아이돌이 아니라면, 임신&출산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고졸로 바로 공장에 취직한 게 아니라면, 당사자가 되기엔 거리가 있다. 하물며 당사자라고 해도 그 문제에 대해서 똑같이 겪었을 리는 만무하다. 즉 당사자 사이에서도 경험과 문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당사자의 경험을 모아서 이를 하나로 녹여내는 것이 아닌, 각자의 경험 모두를 (당사자가 아님에도) 공유할 수 있는 연대에서 힘을 얻는다.
결국 나는 여성이고 당사자이니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지만, 남성은 당사자가 아니라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라는 주장은 촘촘한 짜임새 있는 논리가 아니다.
당사자, 여성주의
그렇다고 당사자주의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대체로 많은 여성이 성희롱과 성추행, 임금차별 유리천장을 겪는다. 많은 인권 운동이 당사자로부터 시작한다. 여성운동, 장애인운동, 흑인운동 등 당사자들이 이러한 부조리함을 함께 겪고 운동을 주도한다. 그래서 당사자주의는 중요하다. 많은 운동은 대체로 당사자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함께 시작한다고 해서 이들 당사자들이 모두 균일하다고 간주하면 안 된다. 차이를 무시하는 당사자주의는 전체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
흑인은 모두 당사자이고 그러니 함께 흑인 운동을 했더니, 여성 흑인에 대한 차별은 은폐되어 있었다. 장애인 인권 운동을 했더니 돈이 없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장애인과 대학을 졸업한 장애인의 위치는 달랐다. 82년생 김지영조차도 문학평론가로부터 비판받는 지점이 있다. 김지영의 경험이 모든 여성의 경험으로 치환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을 모르는 남성 아저씨 문학평론가의 비평이 아닌 페미니즘 문학평론가의 비평이다. 그러니까 김지영의 4년제 졸업과 회사 취업은 고졸이자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인 여성의 경험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김지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김지영만을 여성으로 보고, 페미니즘은 단일한 기제라는 착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이만큼 어렵고 복잡하다. 난 여성이야. 그러니 모든 여성을 이해할 수 있어, 와 같은 말이 페미니즘에서 성립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전에 했던 여성혐오적 행동이 있다."
"결국 범죄를 저지른다. 다 가짜 페미니스트이다."
"백인이 흑인 인권 운동에 왈가왈부할 수 있냐?"
"자본가가 노동자 편드는 것 봤냐?"
"남성이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명제를 반박해보겠다.
"이전에 했던 여성혐오적 행동이 있다."
→ 당연히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적 성찰이 없다면 누구나 여성혐오적 행동을 한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라도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없으면 장애인 혐오 발언을 한다. 과거에 한 행동보다는 현재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봐야 한다. 페미니스트가 장애인 혐오 발언을 했다고 바로 "넌 장애인 혐오자야"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건 잘못된 발언입니다"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혐오 발언을 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남성이라는 젠더 하나를 축으로 두고 이전에 했던 여성혐오적 행동이 앞으로 그 사람 인생 전체를 대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잘못되었다. 물론 많은 남성은 이전에 했던 문제된 행동과 발언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래서 문제이고, 나도 알고 있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거나 심각한 비윤리적 행동은 논의에서 제외한다. 이건 경찰서를 가야하는 문제이다.)
"결국 범죄를 저지른다. 다 가짜 페미니스트이다."
→ 그럴 수 있다. 딱히 반박할 필요 없는 명제 같다. 그들은 남성 페미니스트라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냥 범죄자일 뿐이다.
"백인이 흑인 인권 운동에 왈가왈부할 수 있냐?"
→ 백인 역시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백인이 BLM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남페미가 페미니즘 운동에 왈가왈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왈가왈부는 무엇인가? 단순히 의견을 내는 것인가 아니면 멘스플레인 또는 부적절한 주장인가? 남페미 역시 적절한 의견을 내비쳤다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남페미이기 때문에 그 의견을 묵살한다면, 이것이 여성주의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는가?
"자본가가 노동자 편드는 것 봤냐?"
→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반대로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장애인 인권 운동은 장애인만 해야 하는가? 퀴어 운동은 퀴어만 해야 하는가? 동물권 운동은 인간이 할 수 없는가? 환경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환경을 보호하는 이유는 오직 인간의 편리함 때문인가?
→ 당신이 퀴어가 아니고 장애를 갖고 있지 않다면 퀴어와 장애 인권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당신은 인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개와 닭 돼지 등 동물을 위해 무엇도 할 수 없다, 등등 여러 지적이 가능하다. 퀴어가 아니어도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퀴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 장애인이 아니라도 장애 인권 운동에 헌신할 수 있다. 동물이 아니더라도 동물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남성이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이다."
→ 실제로 남성의 발화가 더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성의 자리를 쉽게 강탈할 때도 많다. 그러한 행동은 당연히 문제시된다. 그러나 실제로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이것에 대해 분노하는 남성을 단순히 여성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 말 자체를 하는 것보다 그 말을 어떻게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메신저가 아닌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 때로는 메시지가 메신저를 경유하여 효과를 볼 때가 있다. 물론 그럴 때는 그 위계와 권력을 비판해야 한다.
한참 페미니즘 리부트가 흥하고 여러 커뮤니티 사이에서 K-래디컬 페미니스트의 게이 혐오, 트랜스 혐오 등등이 나오면서 교차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결국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교차성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 젠더를 안티-페미니즘의 기제로 쉽게 연결하는 생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남자라서, 왠지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안티 페미니즘의 글처럼 읽힐까 고민이다.
다음 편은 남페미의 역할에 관한 글을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