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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꽤나 3시간전

여름아 부탁해 - 인디고

바다에서 부르는 노래

Summer Nights.

스무 살이다. 짬짬이 알바 하며 모은 돈이라 해봐야 얼마 안 된다. 그래도 여행을 놓칠 순 없다.  낭만은 챙겨야 하지 않나. 스무살인데. 함께 떠난 네 친구 모두 여자 친구가 당장 없으니 청승 떨기 참 좋은 조건이다. 남자 넷의 낭만이 모인다.

기차여행. 바다- 좋지. 조개구이... 는 너무 비싼데 칼국수로 하자, 만남.

 

“만남?”

“바닷가에서 인연을 만나는게 낭만이지” 현구가 말했다. 


좋은 친구의 기준이 ‘취향과 가치관에 얼마나 영향력을 주었는가.’라면 현구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였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를 알려주고 뉴에이지에 심취해 있던 나에게 힙합을 들려준 친구다. 현구는 그리스에 등장하는 미국 청년들처럼, 한껏 구렛나루를 눌러가며 사랑과 자유를 찾았다. 물론 과도하게 가슴에 힘을주고 다니거나, 교정기를 가리기 위해 이빨을 감추며 웃는 점이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네 명의 친구는 무궁화호를 타고 대천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현구는 그곳을 젊음의 해변, 많은 인연이 연인이 되는 곳으로 소개했다. 달걀과 사이다, 네 줄 들어있는 소세지를 비닐 채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는 대천해수욕장을 하와이 해변 정도로 마구 부풀렸다.


도착. 물론 상상과는 달랐다. 우리 숙소는 아는 사람만 저렴하게 받아주는 하얀, 아니 뿌옇게 하얀 여관방이었고, 여느 때처럼 변변치 못한 안주와 술을 들고 바닷가에 앉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자 무리들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현구는 호기롭게 “간다? 지금 가서 말 건다?”라고 말했고, 나는 만류하며 “에이 우리끼리 놀자.”라고 받아치지만, 내심 기대한다. 나름 인물 좋은 석호가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러자 현구는 정말 혼자 일어나 저쪽 여자 무리에게 향했다. 뭔가 말을 거는 그림은 그럴듯한데. 어색하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웃으며 뛰어 돌아온다.

우리는 애꿎은 석호를 땅에 묻고 봉긋한 모래 언덕 두 덩이를 가슴에 만들어 보인다. 뭐 하는 짓인가 했지만, 깔깔거리며 나도 공을 들이고 있었다. 소나기가 내린다. 온몸을 적실 때까지 비를 맞고 바닷가를 뛰어다닌 우리는 창피함과 아쉬움도 모르고 뛰어다녔다. 


여름아 부탁해

신곡도 별로 없는 노래방에 갔다. 사실 별 상관없다. 신곡이 있어도 옛 노래를 더 부르는 친구들이었다. 좀 전의 그분들과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는지 현구는 제일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불렀다. 


비키니 입은 그녀를 만난 후, 나의 인생은 달라졌어.
그대를 가질 수 있다면 담배라도 끊겠어요. 

멜로디와 다르게 공감할 수 없는 가사들이 튀어나왔다. ‘인생’이나 달라져야 하는 건가. 그 이유가 비키니인가. 그럼 너무 속된 것 아닌가. 사귀는 것도, 연애도 아니고 가진다고? 소유라니 너무 강한 어조인데. 담배를 끊겠다고? 보통 다른 걸 걸지 않나? 쟤는 담배도 안 피우는 애가 저 노래 가사를 이해하는건가? 왜 심취해서 부르는거지? 눈 왜 감지? 


나는 이 노래도, 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나선 밤바다, 찬 기운이 몸속 깊이 스밀 때까지

우리는 실없는 농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대책 없는 낭만들을 나누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것 없는 내용이지만 둘러앉은 친구들의 눈은 꽤 빛이 났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현구는 사라졌다. 연락이 끊긴 게 아니라 생사의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는 20대 중반,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지냈다. 해외로 나가서 살 거라는 말도 있었다. 모두 직장에 다니고 삶이 퍽퍽해졌을 때 즈음 현구를 수소문 해보았지만 누구도 연락되지 않았고 그의 부모님 조차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정말 사라져 버렸다. 


불꽃놀이 땅에 쏘기, 소나기 맞으며 뛰어다니기, 가슴 만들기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잔뜩 하던 녀석. 

치기 어려서, 젊어서, 거칠어서, 솔직해서 어설퍼서 아름다웠던 현구.

현구가 언제 사라졌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게 치기와 젊음이 사라진 때, 그 때 현구는 사라진것이다. 내가 그를 사라지게 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아이가 여름아 부탁해에서 “그녀”를 한참이나 찾던 것처럼

이해 안됐던 여름아 부탁해를

그 여름의 소나기 속의 현구를 다시 불러본다. 


여름아 부탁한다.

나의 아름다웠던 친구를 찾아다오.




잊을만 하면, 수면위로 올라오는 '여름아 부탁해'. 권은비의 리메이크 곡, 동명의 드라마 까지 탄생했지만

나의 인생 드라마 중 하나 <연애의 발견>에서 한여름역 정유미 배우가 떠오르게 하는 곡이다. 극 중 한여름의 전화 벨소리에서 항상 등장하여 드라마 속 정서가 잘 기억에 남는 곡.

2002년 1집 여름아 부탁해는 대표적인 원히트 원더 곡으로 여름하면 떠오르는 노래로 뽑히기도 했다. 자그만치 6위! 해변으로 가요, 해변의 여인, 여행을 떠나요, 여름 이야기, 냉면 다음이라면 상당히 높은 순위 아닌가. 앞으로도 여러 모습으로 변모할 여름아 부탁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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