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부르시던 노래
시골 마을은 잔치가 많다. 누구네 집 칠순, 누구네 집 결혼,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할머니는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유일하게 아는 노래, 부를 수 있는 노래. 할머니에게는 동백 아가씨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잔잔하다.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주변의 박수 소리도 함께 잔잔해졌다. 가는 소리지만 그 안에 단단한 심 하나가 느껴졌다.
일제강점기, 할머니는 남편이 어떻게 사라진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혼자 딸을 키워왔다. 광복이 온 줄도 모르고 남편의 생사도 모르고 그저 살아 내기 바빴다. 할머니는 딸을 시집보내고 늦은 나이에 노총각을 만났다. 다시 결혼하고 새 삶을 살아보려 했더니 전쟁이 났다. 전쟁이 끝난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또 늦게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1914년생 할머니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헤매고 가슴을 도려내며 가족을 지켰다.
“할머니 얘가 나 괴롭혀요!” 장난 삼아 말했다가 할머니가 작대기를 들고 동네 형에게 달려가기도 했다. 형이 용돈이 필요하다며 심통을 부릴 때면 옆집에 돈을 꿔서라도 주었다. 답답한 나의 할머니는 여느 할머니들처럼 과일은 껍질을 좋아하고, 생선은 머리를 좋아하며 짜장면, 햄버거와 같은 ‘그런’ 것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여느 투정 들에 대한 답으로 할머니는 나에게 김치 떡국을 가끔 해주었다. 기름에 짠지를 들들 볶다가 멸치 국물을 붓고 떡을 넣어 팔팔 끓인 떡국. 내가 가끔 김치 떡국과 동백아가씨에 대한 추억을 꺼내면 어머니는 촌스럽고 투박한 것이라 말했지만, 나에게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붉게 피어나는 따듯한 것들이었다.
내가 아는 것, 해줄 것이라고는 글 읽어 주는 것, 실 바늘에 꿰어 주는 것뿐이었다. 성실과 정성이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던 할머니는 논둑에 콩이라도 심어 팔기, 시장 바닥에 앉아 뜯은 나물 팔기 그리고 남은 것들로 밥해주기와 같은, 시쳇말로 가성비 떨어지는 일들에 마음을 다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2월의 끝, 할머니는 논두렁의 불꽃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흙만 만지다가 떠난 할머니. 김치 떡꾹처럼 투박한 할머니. 언 땅을 열어 할머니의 관을 내리던 날. 할머니와 닮은, 할머니가 되어버린 첫째 딸은 다시 가늘게 불러본다. 아마 저 아랫동네엔 동백꽃이 피었을 것이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 잎에 새겨진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한국영화 르네상스 60년대 그 주역인 신성일, 엄앵란, 김승호 주연의 동백 아가씨 영화의 OST 였다.
개인적으로는 저 세 배우가 함께 등장한 <로맨스 빠빠>라는 영화를 매우 애정한다. 당시 최고 조합의 배우들이었는데 단순 신파스러운 내용과 작품에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OST가 더 성공했었고 국민가요, 국민가수 타이틀을 주게된 노래이다.
섬 처녀에게 서울 대학생이 와서 사랑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다시 서울 사내는 만나지 못하고 슬퍼하다가 새 남편과 결혼하여 지내는 섬처녀. 어느날 다시 신성일을 만나 지만 서로 다른 짝이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의 딸을 넘겨주는 이야기.
나의 할머니는 끝내 첫째 고모의 아버지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열심히 불렀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은영화, 그리고 노래 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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