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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Dec 18. 2020

역사와 명상 속에서 살다1

1-3

1. 프롤로그- 역사를 공부하게 되다

1. 프롤로그-역사를 공부하게 되다

 

사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이 세상 살고 있는 나라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 그에 대한 답찾기였던 것같다.     


유적지에 구경가고, 박물관에 놀러가고, 옛 이야기책을 읽으며, 수 천 년의 세월 속에 인간이 과연 근본적으로 변해온 것이 무엇일까? 나는 과거를 살았던 그 인류보다 무엇이 더 나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소소한 의문들을 가지게 되었던 것같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AI혁명, 뭔가 크게 바뀐 것 같기는 하다.

지난 날 인류의 살아온 흔적들을 구경 삼아 이런 저런 박물관에 갔었다.

그 시큼털털한 선사시대의 토기류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인류의 유품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현대를 월등한 세상이라 믿고, 수천 년, 수백 년 전의 인간 삶이 충분히 미개하고 이질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하거나, 해석되지 못할 것은 극히 적었다. 그것이 도리어 이상하기만 했다.     


천 년 이전의 사람들이 남긴 고전을 읽어도, 그들의 사고방식이 전혀 이해 못 할 생소함이 아니었다.

시대마다의 분위기, 이념 등에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그 속 내용에는 결국 인간이 먹고 사는 생존 문제, 권력, 애욕을 비롯한 온갖 인간 집단관계 속에서의 갈등과 싸움, 집착과 고통, 좋고 나쁘고 시비분별의 이야기들.

그 어떤 무수한 사연도, 그 어떤 시대에 있어서도 생자필멸(生者必滅), 성자필쇠(盛者必衰)의 인간사였음을 계속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그러한 인간 삶의 허망함을 달래고 불안감을 메꾸기 위한 듯, 어느 시절에도 각 종의 신앙, 종교에 기복하는 이야기 또한 빠지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과거의 것이니까, 과거는 이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고, 지금 시대에 사는 내가 훨씬 더 고차원적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게 어려운 것 같으니 살짝 자괴감마저 들곤 했다.

나처럼 이런 종류의 자존심을 치켜세웠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고대의 어느 설화 속에서도 찾아진다.

과거 인류와 지금의 나를 연결시켜 혼자 공상에 빠져 사는 재미 정도가, 역사공부에 몸 담게 된 계기 같다.


 


2. 역사 연구 속으로


내가 왜 일본사 연구를 일생의 업으로 선택했는지, 처음 거기에 어떤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사를 하려 했고, 모든 역사는 뿌리부터 알아야 된다고 생각되어 고대사를 선택했고, 한국고대사를 하려하다보니 일본의 사료를 읽어야 했고, 그래서 먼저 그것을 제대로 읽고 공부해 보아야겠다, 그 정도였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 대학원 외국인 유학생으로 들어갔다.

일본사(당시는 국사)연구실의 쾌쾌한 냄새나는 고서적들이 가장 먼저 나를 압도시켰다.      

무엇보다도 세미나 때 지도교수 자리를 중심으로 최고참 박사과정부터 쭉 서열지어 앉는 강의실 최말단 자리에 앉아서 꽤나 기가 죽어 있던 시절이었다.


대학원 석사(일본에서는 수사(修士)라고 함)과정에 정식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니까, 당시 일본황실 자녀의 역사 교육을 맡고 있던 사사야마(笹山) 교수가 “한번도 유학생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난색을 표현했다.      

유창하지 못한 일본말로, 또 당시 일본 사회 인간관계의 화법도 잘 모르던 터이고 해서, “시험 보겠다”로 그냥 밀어부쳤던 것같다.


그 뒤 일본인 학생들도 제법 떨어지는 대학원 입학 시험준비를 위해, 야마카와(山川)출판사에서 나온 백과 사전급의 <일본사대계(日本史大系)>를 고대, 중세, 근세, 근대(시험문제가 시대별 각 교수님이 출제)이렇게 4권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각 시대별 문서, 구즈시(くずし) 판독도 난제였다.      


2년의 수험기간동안 몸무게가 10키로 가깝게 줄었다. 처음으로 혼자 생활하는 어려움에다 지독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심정에는 “내가 여기 일본에서 시험에 떨어질 수는 없다”가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올라오는 마음인지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의 멍에가 내 등 뒤에 지어졌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견디던 세월이었다.     


사실 대학원의 석•박사과정의 일본인들은 모두 다 친절했다.

그들이 스스로를 세계 제1위의 일본사 연구자라고 자부해도 그것이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진지한 연구 태도들, 성의에 찬 발표문들, 겸손한 자세들이 많이 존경스럽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들어간 나의 연구 테마는 <일본고대 왕권과 외교>였다.

당시 일본고대사 학계에는 대표 명제가 일본 고대 율령국가론, 소제국(중화)론적 관점이 만연하였다. 현존의 일본 요로(養老)율령과 중국의 잔존 율령과의 세심하고도 꼼꼼한 비교 고증 작업을 논한 뒤에, 일본인 연구자 대부분은 결론에서 거의 한결같은 논조로 맺음한다.      

핵심적으로 말한다면, “일본고대국가는 (비록 중국의 율령을 수입하였으나) 나름대로 독자적인 율령을 편찬했다”. “소중화 사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즉 이는 한반도보다 우위의 제국국가로서 존재하고자 하였다는 뜻)”.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결론 방식이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 뿐인데, 한국인이라는 의식 속에 들어가 있던 나는 이게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고대사 연구자들이 써놓은 수 백 편의 논문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은 연구자가 아니라 투사가 되어 있었던 듯싶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있어 귀한 배움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깊이 상대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배워서 그것을 내 성장의 디딤돌로 삼으려는 자세를 잘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같다.          


 


3.명상을 만나다


 10여년의 일본생활을 마치고 학위를 받고 돌아온 나는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기진맥진이었다.

유학생활 이래로 심한 편두통에 위병, 변비에 피로까지 겹쳐서 온몸이 힘든 것은 고사하고, 정신적으로 깊은 우울에 시달렸다. 무엇보다도 다시 시작된 한국에서의 삶이 낯설었다.      


나는 매일매일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밤잠 한번 푹 못자고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 왔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간 삶의 조건을 다 얻은 듯 싶었는데도 마음이 어두운 내가 죄스러웠다. 그냥 매일이 피곤할 따름이었다.      


근처 정신과에 상담을 한번 가보았지만 약을 받아들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던 중에 아파트 우편함 속에서 전단지 한 장을 보았다. 명상 센터 것인데,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내용이 마음에 닿았다. 마침 5분 거리에 센터가 있길래 가보았다.

이게 뭔지 처음에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조금씩 내가 달라져갔다.

센터에 갈 때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축 쳐져 들어간다. 명상이 끝나고 나오면서는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노래를 흥얼거릴 때도 있었다.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껴서 그냥 계속 다녔다.

그러다가 방학을 해서 집중 수련을 해보기도 하였다. 당장의 피곤함과 스트레스 없는 삶이 나의 목표였다.


한단계 한단계 방법에 따라 명상을 하면서, 나는 나의 지나온 삶을 진심으로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깨달음은 나라는 존재가 어디서부터,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하나하나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은 내가 왜 그리 좋은 환경 조건 속에서도 행복한 마음이 들지 않았는지, 왜 사람들과 친하지 못하고 홀로 고독하고 외로왔는지 그 이유가 찾아졌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며 나의 마음을 만들며 온 유년시절. 자신을 담금질하며 힘든 마음을 쌓던 학업시절. 고독했던 유학시절. 결혼이며 출산이며 양육이며 취업이며, 인간관계의 관습들이 하나의 숙제처럼 버겁고 지친 마음이 들었던 날들.

그 속에 상처받기 싫은 나, 무시당하기 싫은 나, 인정받고 싶은 ‘나’가 있었다.      


그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을 붙들고 자존심과 열등감 속에서, 그런 나의 마음세계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불편해하고 싫어하며 살았다. 그렇게 쌓아올린 마음의 벽들 속에 스스로 갇혀서, 나는 가슴 답답해하고 외로와하고 살았다는 것이 알아졌다.

 나도 모르게 쌓아온 내 삶의 사진들, 그것이 내 마음이 되어 굳건한 ‘나’라는 상념체로 자리잡고 있었다.      


떠올려보니 그것은 다 내 기억 속 ‘사진’쪼가리였을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 현재 존재하는 실제가 아니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없는 ‘허’ 였다.

그것은 나의 ‘참마음’이 아니었다.


내 마음을 돌아보며 버리기를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조금씩 나아져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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