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자아 찾기 (7)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잠이 많았다. 고3 때도 하루 7시간 이상은 잤다. 아침 일찍 일어나 8시 또는 9시까지 출근을 하는 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속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11년을 한결같이 세상 제일 불행한 기분으로 기상을 했다. 5에서 10분 단위로 적어도 3번의 알람을 듣고 더 늦게 일어나면 지각을 할 것 같을 때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회사에서 출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1시간 일찍 퇴근하겠다며 1시간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만 아침에 일어나는 게 이렇게 힘든 건가 싶었다.
잠에 관해서는 또 상당히 예민해서 다양한 이유로 밤에 잠에 들지 못했다. 커피를 마신 날은 새벽까지 잠이 안 와서 디카페인 커피만 마신 지 오래되었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와도 잠이 잘 안 왔다. 다음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면 잠이 안 왔고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에도 잠이 안 왔다. 평소보다 유독 피곤해서 푹 자고 피로를 풀고 싶은 날은 더 잠이 안 왔다. 그래서 잠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자도 되는 휴일 전날밤 침대에 누웠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데 아직까진 그렇지 않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오전에 일정이 있지 않은 한 매일매일 알람 없이 잠자리에 든다. 퇴사하고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다. 요즘에도 가끔 잠이 안 올 때는 있다. 예전에는 다음날을 생각해서 억지로 잠을 청했는데 지금은 잠이 안 오면 일어나서 졸릴 때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리고 다음날 더 늦게까지 잔다. 기상 시간이 점점 늦어져 생활 패턴이 무너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남들은 이미 회사에 출근해 있을 시간에 기상을 하는 게 처음엔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 들고 스스로 잘못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침 일찍 온 문자에 뒤늦게 답장을 할 때는 내가 늦게 일어나는 것을 들킨 것 같아 창피한 느낌이 들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라는 말이 성공의 법칙처럼 사용되고 ‘미라클 모닝’이 유행한 적도 있다. 잠을 줄이고 아침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는 게 미덕인 사회에 살면서 잠은 적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좋은 것이라고 단단히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 같다.
사람마다 생체 리듬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다르다. 나는 20대 때도 남들처럼 밤을 새워 놀지는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서 저녁 시간이나 주말은 그냥 쉬는 시간이어야 했다. 그래야 생활이 유지되었다. 퇴근하고 취미생활을 하거나 약속을 잡는 건 남 얘기였다. 주말에 가족 모임이라도 있으면 일 같이 느껴져 부담스럽기도 했다. 스스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퇴사를 하고 나서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나는 훨씬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에너지를 몰아서 해내는 힘은 있지만 빨리 방전이 된다. 출력은 나쁘지 않은데 용량이 너무 적은 배터리 또는 연비가 안 좋은 스포츠카와 같다. 내가 그동안 취미가 없었던 이유도 나에 대해 잘 몰랐던 이유도 모든 에너지를 남을 위해 일하면서 썼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의 적고 소중한 에너지를 나를 위해 사용한다. 매일 성인 평균보다 많은 시간을 자고 늦게 일어나 내 안의 배터리를 충분히 충전하고 깨어 있는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에게 중요한 일을 한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쓰고, 더 소중한 나에게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