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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Sep 24. 2022

감정 전당포(6)

노랗고, 타고, 빨갛고

- 좀 탔네요? 



이번 여름,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나는 노란 피부에서 살짝 그을린 피부색으로 변했다. 전혀 인식하지 않고 지내다가 손과 팔을 보니 많이도 타 있었다. 가끔은 나도 포착하지 못한 걸 상대로부터 듣는 경우가 있다. 피부가 나보단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보는 영역이라 그런 것 아닐까. 나도 모르는 나의 영역. 


앞선 물음과 같은 질문이 올 경우에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한다.




- 많이 걸어서 그런가 봐요.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백퍼센트 맞는 말은 아니다. 재택 근무가 주 활동지가 되면서 활동량이 급격히 떨어졌다. 평상시에 어딜 가는 걸 좋아하는 나로썬 주 목적지가 집이 되었으니 어딜 갈 필요성이 없어진 셈이었다. 말이 좀 모순적인가. 어딜 가는 걸 좋아하지만, 좋아한다는 이유로 콕 찝어서 한 공간을 가는 경우는 많이 없다. 어디 가는 김에 베이커리도 가고, 카페도 가고, 소품샵도 가는 편이다. 루트를 정해서 돌아다니는 게 내 활동 방식이다. 그런데 업무 방식이 바뀌면서 내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냥 걷는다. 블루투스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끼고 정처 없이 걷는다. 1시간을 채울 때도 있고, 10분도 못 채우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목적 없는 걸음이었다. 살면서 '그냥 걷는다.'에 집중한 적이 몇이나 될까. 




나는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해보고 싶은 것도 물론 차고 넘친다. 지금은 그런 열정은 다소 사라진 것 같다. 우선순위가 생기고부터였다. 전에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직진이었다. 찰나의 망설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일단 하고 이유를 찾는 타입이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숙고'라는 과정이 생겼다.





지갑이 얇아져서, 가 제일 큰 이유다. 신용카드 할부금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현재만을 살던 내가 미래를 염두하기 시작한 게 계기였다. 돈을 모아야 대비가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으면 만남도 불편하고 지인의 생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챙겨주고 싶은 나와 챙길 수 없는 나와 괴리가 생긴다. 내가 바라는 나와 현실의 내가 충돌한다.



그 둘 사이의 공백을 메꾸고자 생각한 게 우선순위였다.



사람은 무언가 부족할 때 순위를 정하게 된다. 옷이 부족하면 어떤 걸 먼저 사고, 어떤 걸 나중에 산다거나 등. 나는 돈이 없으니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사이 순위를 매겼다. 다 하고는 내 미래를 준비할 순 없었다. 돈이 전부인 삶을 살고 싶진 않으나 돈이 없어 돈만이 전부가 된 삶을 살고 싶진 않아서였다. 그러니 돈을 모으기 위해선 지출을 줄여야 했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편맥을 하러 가거나, 집에 초대해서 밥을 같이 먹거나, 생일선물로 저렴하지만 귀여운 것들로 선물해서 보내는 등. 나름의 방법을 강구해 지인들에게 진심을 표했다. 가을 바람을 맞으며 편맥을  했을 때 느꼈던 운치,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며 느끼는 기쁨이 추가로 따라왔다. 외에도 책을 주로 사서 봤지만, 도서관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장을 보러 갈 때 엄마에게 애교를 부려 먹고 싶은 것들을 장바구니에 추가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쓰면서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보냈다. 나는 딱히 달라진 게 없다 느끼는 데 주변에서 곧잘 긍정적인 얘기가 들려온다. 피부가 타서 그런가.  



이번 여름은 유난히 해를 많이 봤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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