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당약사 Oct 12. 2022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나침반이 있다.

1형 당뇨인 약사 에세이 EP14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  

  


 이 문구는 약대 입학  나의 가치관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인용했던 것이다. 24살 청년의 심장을 때렸던 이 메시지가 지금은 나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고 있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고요한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 온다. 나의 시간에도 그런 선물 같은 날들이 채워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요즘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이 선물은 그 누구보다 내가 나에게 선사했을 때 값지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1형 당뇨니까...    



 내 머릿속에는 위 문구로 시작하는 딴딴한 생각 회로가 있었다. 이것 때문에 나는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마다 주저하거나 포기한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동기들과의 해외여행조차 건강에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불참했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할 때도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이 생각의 고리를 부수기보단 새로운 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무엇을 하기 전 몸 사리지 않고 그냥 저지르는 것이었다.    

  

 약국에서 13시간 이상 근무해보거나 시간이 나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요즘엔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으며 내 몸에 근육 붙이기 작업을 하고 있다. 근육량이 증가하려면 운동량 대비 영양 섭취도 충분해야 한다. 소식좌로 살아왔던 나였지만 일단 꾸역꾸역 먹었다. 급격하게 증가한 운동량과 먹는 양 덕분에 혈당 변화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기도 했다. 그동안 고이 모셔두었던 근육인지라 근육통은 덤으로 따라왔다. 그렇게 내 육체에는 통증과 피로감이 따라다녔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만큼의 행복이 충전되고 있었다.


 보통 생각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한다. 하지만 변화된 행동이 생각을 바꾼다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막상 실천으로 옮겨보면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내 몸에 축적된 변화된 행동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 고리를 선사해주면서 기존의 것과 시너지 반응을 유도했다. 그 반응의 결과는 ‘절제의 미학을 즐기며 항상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하자'라는 것이다.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몸에 좋은 것을 하기보단 안 좋은 것을 피하세요.”라고 답한다. 아래는 내가 피하는 항목이다.

1. 인스턴트 음식 먹을 때 음료 없이 먹거나 무설탕 음료 마시기
2. 치킨, 돈가스 같은 튀긴 음식 먹을 때 튀김옷 벗겨내서 먹기
3. 돼지고기 먹을 때 비계 부분 입으로 베어내기
4. 액상과당, 설탕 들어간 음료 피하기(저혈당일 때 제외)

 

 이 중에서 2번 항목은 일정 부분만 실천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치느님이기에 불만이 쌓이지 않도록 타협하면서 먹는다. 더불어 탄수화물 섭취는 적당량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 습관들 덕분인지 일상에서 절제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것이 근간이 되다 보니 내가 그동안 어렵게 생각했던 것들을 시도하더라도 나만의 흐름대로 펼쳐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몸을 사렸던 과거와는 서서히 작별하고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 현재와 미래에 몸을 맡겼다.  




 


 나는 1형 당뇨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자신을 환자로 여기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이 생각의 틀에 갇히면 자기 연민으로 인해 피폐한 정신세계를 경험하며 다른 것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어진다. 더불어 자신이 환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배려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역차별적인 사고를 가질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배려를 받는 입장에서는 감사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배려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상대방과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나는 자신을 ‘1형 당뇨 생활인’이라고 정의한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 건강관리를 하는 것은 필수다. 췌장이 남들보다 일찍 고장 난 관계로 애 좀 먹었지만 이걸 계기로 내 몸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든든한 보험 하나를 가입한 것 같은 효과가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나침반이 있다. 이것이 가리키는 곳을 옳은 방향이라 믿고 나아가면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 그 길 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 준비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버티다 보면 삶의 샛길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즉시 이 길을 당당히 걸어가서 자신에게 축복 같은 시간을 맞이하면 된다. 당신과 나의 길을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내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