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수 없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어릴 적 봤었던 애니메이션에서 어느 캐릭터가 아주 멋있게 말했던 대사다. 이 문구는 심한 독감을 앓기 전에 맞는 백신처럼 내 영혼의 항체가 되어주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한 것은 서툴기 마련이다. 서툰 상태를 벗어나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계속 생소하다. 1형 당뇨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그렇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생소하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크게 동요되지 않으려고 연습했던 지난 날이 현재 나에게는 큰 자산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산으로 축적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이 내 삶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이것을 그대로 남겨두기보단 곱게 빚어서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선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아홉 살 그 무렵 나는 다시 태어나야 했다
롤러코스터처럼 나타났던 내 삶의 변곡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1999년 봄, 9살이 되던 해였다. 학교에서 놀기 바빴던 남자아이가 무엇이 그리 피곤한지 하교해서 집에 오기만 하면 잠을 잤다. 그리고 자다 깨서는 배고픔을 주체하지 못해 이것저것 많이 먹었다.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하겠지만 그 시절 나는 식탐이 정말 많았다. 식사를 애피타이저처럼 먹어치우고 과자와 과일을 주식처럼 먹었다. 또 물과 탄산음료는 왜 그리도 많이 마셔댔는지 쉬야를 하기 위해서 화장실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였다.
한동안 나를 지켜보던 엄마가 이상 징후를 느꼈는지 내 손을 잡고 인근 내과에 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에게 병원이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유년시절 내 기억 속 병원은 특유의 찬 공기와 소독약 냄새로 나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어릴 때 나는 몸이 약해서 잔병치레를 하느라 병원에 자주 갔었다. 이번에도 나는 '별일 없겠지' 하고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 소변과 혈액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렸다.
안내데스크에서 나의 이름을 호명하자 엄마와 나는 원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기억에 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9살 소년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검진 결과를 말하는 의사의 입술에 나의 시선은 고정되었다. 결과를 듣기까지 몇 초의 찰나가 몇 년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우리 두 사람에게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드님이 소아당뇨입니다
옆에서 나보다 더 긴장했을 엄마가 갑자기 나의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는 병원이 떠나갈 듯이 꺼이꺼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기쁨과 슬픔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나를 안고 있는 엄마의 눈물이 내 눈에도 흘러넘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애라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에선 시한부 선고를 받는 장면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물론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아서 삶이 끝나는 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철없는 소년을 안고 있던 한 여인은 그와 맞먹는 심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여인의 도움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건강관리를 잘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나의 피에 둥둥 떠다니는 포도당 수치, 즉 혈당을 측정기로 재본 결과 HI라는 수치가 나왔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혈당이 너무 높아서 측정이 불가하다는 뜻이다.(임상적으로 HI의 의미는 혈당 500mg/dl 이상을 뜻한다.) 그래서 나에게 인슐린 투여가 시급하였다. 의사는 나에게 인슐린을 황급히 투여해 준 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 내용은 9살 꼬맹이의 고막에서 튕겨져 나가는 것뿐이었다. 내가 할 일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당시엔 엄마의 할 일이라고 정정하는 게 맞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의사가 당뇨관리를 위해 알려 준 내용은 학교급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영양사가 볼 법한 내용이었다. 핵심은 '음식의 열량을 계산하여 3대 영양소가 갖춰진 식단을 먹자'라는 아주 건강한 내용이었다. 더불어 인슐린 주사에 관한 것도 덤으로 훅 치고 들어왔다. 병원에서 알려주는 정보는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면 좋겠지만 이상적인 경우가 많다.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이 동떨어져 있어서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 말이다. 그런데 이 세상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위대하다고 했던가. 엄마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느 순간부터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린 내가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강단 있는 우리 엄마의 모습 덕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녁에 귀가한 아버지에게 엄마가 이 사실을 담담하게 알렸다. 평소에는 감정표현을 잘 안 하는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현실 때문에 어찌할 줄 모르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나에게 괜찮을 거라고 격려해주었다. 괜찮을 거라는 말 덕분이었을까? 그날 내가 느꼈던 혼란스러운 감정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해 준 두 분 덕분에, 그 당시 내가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꿈꾸며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우리 세 가족은 함께 진단받았던 병원으로 갔다.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려웠지만 부모님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집중하였다. 이것을 지켜본 나도 부모님과 함께 호흡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의사는 전에 알려줬던 내용을 우리에게 한 번 더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늘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그 바늘은 주삿바늘과 채혈침이다.
다행히 난 어릴 때부터 주사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일생에 몇 번 될까 말까 하는 이벤트였기에 그랬던 거 같다. 이 친구들과 평생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 동안 내가 아침에 해야 할 루틴이 두 가지가 생겼는데, 그것은 채혈침을 이용해서 혈당 측정하는 것과 인슐린 주사를 투여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소한 삶에 적응할 때까지 엄마는 천천히 나와 함께 호흡해주었다. 이 덕분에 난 새로운 삶에 조금씩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의 상황을 학교에도 알려야 했다. 1형 당뇨인이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겪는 일은 저혈당 쇼크다. 저혈당 쇼크에 빠지면 의식을 잃어서 응급실에 실려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릴 때는 대처하는 것이 더딜 수 있기에 옆에서 도움받는 것이 안전하다. 그래서 학기 초만 되면 부모님이 나의 담임선생님과 인사하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이 당시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상황을 알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린다는 거 자체가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보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 더 나았기에 이것을 알리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이 최대한 내 비밀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 각별히 몸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 위험한 상황에 빠진 적은 없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했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글쓰기
겉으로 봤을 때 평범한 삶을 지낸 거 같아 보여도 누구나 그 시절에 자신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문제, 가족 문제, 친구 문제, 나와 같이 건강문제 등이 될 수 있다. 혹자는 신은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 고통의 크기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그 시절 마음이 힘들었던 9살 꼬맹이가 지금은 커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을 통해 세상에 고백하고 있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라는 책에서 다음 구절이 나온다.
상처를 글로 옮기면 위로가 된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내가 남을 위로하고,
위로받은 남이 또 다른 타인을 위로한다.
삶을 지탱해주는 수많은 위로가
소리 없는 글에서 시작된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내 마음속 저 어딘가 묵은 떼처럼 끼어있던 불편한 감정이 조금은 씻겨 내려간 듯했다.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담담하게 표현하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언조차 할 수 없는 감격을 느낀다.
우리의 삶은 예고편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오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할지 선택해야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점이었던 선택을 쭈욱 이으면 단단한 선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된다. 매 순간 최선의 방점을 찍기 위해 노력하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에겐 다시 오지 않을 터닝포인트다. 다가올 미래에는 이것을 계기로 하여 나에게 더 많은 선물을 선사하고 싶다.
당신의 터닝포인트는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