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립한 이후로 매주 꼭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1. 브로콜리 3송이 데치기
2. 방울토마토, 송이버섯 항상 냉장고에 상시 대기시켜 놓기
3. 매주 닭 가슴살 1kg 삶기
4. 고구마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하기
5. 양파껍질 벗겨서 세척 후 냉장실에 보관하기
위 항목은 아침을 거르지 않기 위한 어느 1인 가구 남자의 집념으로 이루어진 행위다. 독립을 하면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먹는 거다.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해주고, 청소는 청소기와 약간의 노동력만 갖춰진다면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섭식 행위를 맛있게 하기 위해선 의지만으로는 하기 버겁다.
같이 살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1인 가구라면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편리함과 효율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나같이 식단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에는 최대한 고민할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아침 메뉴를 최대한 단순화하기로.
20대 중반 무렵, 당뇨가 연차가 쌓일수록 합병증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집에서 식사할 때는 골고루 잘 먹되, 내 세포와 조직 그리고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야채를 꼭 섭취하자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바로 브로콜리와 토마토다. 이 두 친구와 함께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어간다. 이들을 꾸준히 섭취했을 때 효과는 굳이 여기에 쓰지 않아도 몸에 좋다는 것을 다 알 것이다.
처음엔 나도 그들과 친해지는 것이 힘들었다. 몸에 좋다고 해서 먹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입안에선 혀가 거부하고 치아와 턱은 빠른 저작 작용을 통해 분쇄하기 바빴다. 하지만 꾸역꾸역 먹었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그렇게 의무적으로라도 먹다 보니까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그 덕분인지 현재 나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무엇을 시작할 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시작하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아서 하는 일보단 해야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의 삶이다. 그렇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다. 첫인상이 안 좋았던 친구가 베프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싫었던 일도 익숙해지며 편안해지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내가 브로콜리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면 젊을 때 친했던 것들과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이 말은 내게 하루라도 젊을 때 친하게 지낼 것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후회가 없을 거라는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을 위한 선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