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 떠 보니 두 아이 아빠

점점 아버지가 되어가는 6년차 아빠 육아 이야기

I'm an ailen.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오, 난 이방인이에요. 나는 뉴욕에 사는 영국 신사랍니다.)


본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중 한 명인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이다. 젊은 시절에 이 노래를 들을 때는 막연히 '뉴욕에 사는 영국 남자'의 이야기, 완전히 본 필자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이 가사가 머릿 속을 맴돌고 있다. 요즘에는 본 필자가 '뉴욕에 사는 영국 남자'와 너무나도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출근을 하고 있어서 올 한 해 육아휴직을 쓰게 된 본 필자가 두 아이를 모두 등하원 시키고 있다. 물론 세상이 많이 변해서 아빠와 함께 등하원을 하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는 엄마와 함께 등하원을 하고 있다. 등원 또는 하원을 할 때면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본 필자도 등하원 때마다 만나는 첫째, 둘째 친구 엄마들과 얼굴을 익힌지는 꽤 되어서 반갑게 인사는 나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안부 인사 정도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다. 출근으로 바쁜, 사랑하는 아내와도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누는 마당에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고 아쉬운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본 필자도 사람인지라 본 필자와 인사 후에 엄마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소외감은 느껴진다. 또 한편으로 부럽다. 이 소외감과 부러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라면, 사회 생활에 참여하지 못하였을 때 막연히 느끼는 감정인 것일까?

프로 고민러이자 프로 상상러인 본 필자는 위처럼 수시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는 한다. 아이들을 등원 시켜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 필자의 성향이 외향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들 모임에 아빠가 끼어 있는 모양새도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단순히 본 필자의 생각! 당연히 엄마들과 이야기 잘하는 아빠들도 있다!)


본 필자가 이렇게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못해서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의 아주 먼 조상부터 인간이라는 존재는 서로 옹기종기 모여살면서 많은 정보와 감정을 교류하면서 '생존'해왔다. 동굴 속에 그리고 무덤 속에 그려진 벽화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또 정보를 받으면서 본인들의 삶을 점점 더 발전시켜왔다. 인간의 DNA 속에 저장되어 있는 이 욕구는 곧 생존의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엄마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정작 대화에 참여하는 엄마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도 있다.(사람마다 다르다.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대화 속에서 평소 육아로 지친 마음이 달래지기도 하고('저 집도 우리랑 비슷한 문제가 있네?', '우리집만의 문제는 아니었구나', '내가 너무 크게 생각했네') 때로는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밥을 더 잘 먹을 수 있네?' '주말에 이런 곳에 가보면 좋은 시간 보낼 수도 있겠네?' 등)

본 필자가 느끼는 소외감은 바로 이러한 소통의 부재에 따라 DNA가 '생존'하고자 몸부림치는 것 속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였을 때를 돌이켜보면 친구 엄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육아 정보, 동네 정보도 다 알 수가 있었다. 아내 스스로도 육아 동지들과의 동병상련 속에 치유도 함께 받았을 수도 있다.(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서 엄마들과 함께 있을 때는 아이들끼리 놀이터에서 놀면서 교류가 더 이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빠 육아와 동시에 그 길이 닫혀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감정의 교류는 당연히 아내와 할 수 있지만 정보의 교류는 다른 가정에서 어떻게 하는지는 맘카페 또는 온라인 상에서만 알 수가 있다.

시대적 흐름 그리고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육아휴직 수당, 기간 등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가 많이 마련되고 있다.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아 당사자인 아빠 입장에서(올 한 해 한정이긴 하지만) 아쉬워하고 있는 이런 부분은 당장의 정부 정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최소 60~70%의 가정에서 아빠들이 가정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등하원을 하는 시대가 온다면?하고 프로 상상러가 생각의 나래를 펼쳐본다.


p.s. 육아 아빠가 지혜롭게 엄마들 대화에 참여하는 방법 댓글로 알려주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눈 떠 보니 두 아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