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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목란 바라기 Sep 15. 2018

푸드센터가 되어버린 고오급 쇼핑몰

상해 한국인 거리 에게해 쇼핑센터 탐방기

“새로 생긴 에게해 쇼핑센터에서 저녁 8시부터 끝내주는 분수쇼가 시작된대. 거기서 저녁먹고 그거 구경하면 어떨까.”




여친의 제의에 신발을 구겨신고 문을 나섰다. 근래 상해 한국인 거리 근처에는 각각 만상성萬象城과 에게해 쇼핑센터라는 이름의 쇼핑몰 두 개가 들어섰다. 근래 중국에 새로 들어서는 쇼핑몰들은 하나같이 규모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만큼 크다. 만상성의 경우에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의 가는데 축구장을 두 번 지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에게해 쇼핑센터는 동서거리는 만상성보다는 약간 짧을지 몰라도, 잠실 주경기장만큼 크다.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쇼핑몰 두 개가 들어선 이후부터 작금 주변 도로는 교통 체증이 가실 날이 없다.



다섯 시쯤 에게해 쇼핑센터에 도착해서 입구에 설치된 바다의 여신상에게 인사를 건넸다. 불금이라 여기도 빨리 가지 않으면 식당 앞에서 줄을 두세시간 정도 설까 두려웠다. 하지만 좀 일찍 나왔다고 하더라도, 금요일 저녁이라 손님들로 안은 복작복작하리라고 예상했지만, 천만의 말씀... 쇼핑센터 안은 휑뎅그레했다. 사람의 흔적을 찾으러 주위를 둘러보다가 층 별 안내도가 눈에 띄었다. 4층부터 8층까지 전부 밥집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물론 나이키나 필라등의 브랜드도 입점했지만, 영어 학원이나 펜싱 도장 등도 들어와 있었다. 고급 쇼핑몰이라고 하기 보다는 동네 상가에서나 볼 수 있는 점포 구성같다고 생각했다.


7층에 있는 “산차”라는 이름의 사천요리집에 들어갔다. 엊그제 페북에서 쉐주위水煮魚 사진이 올라왔길래 그거 먹으러 왔었다. 밥집의 벽은 녹색으로 도배가 되어있어 마치 상해 요리집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맛은 그저 그랬다. 메밀 국수와 마파두부는 좀 짜고, 쉐주위는 좀 싱거웠다. 그래도 조용히 분위기 잡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찰나, 뒤에서 쿵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이 오락실에서 점프하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페달을 밟으면 화면에 있는 캐릭터가 움직이는 동시에 중장비가 시멘트 뚫는 현장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가 고요한 쇼핑센터에 울려퍼졌다. 다른 요리집은 벽이 있어 차음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산차” 식당은 외부와 개방되어 있어 우리들의 뒤통수에 소음이 화살처럼 꽂혔다. 게다가 대개 중국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이 얌전하고 착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소리지르고 뛰어다니니 식사는 커녕 잠시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세련된 옷을 입은 식당 관리인도 이 문제를 인식했던 모양인지 오락실 근처로 가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면서 누군가와 계속 통화했고, 그네들이 떠난 뒤 오락실에서는 문제를 일으킨 기계의 전원을 내렸다. 


“쇼핑몰 배치가 원래 문제가 있는 것 같구먼.”


계산을 마치면서 여친에게 말했다. 왜냐하면 고급을 지향하는 식당 맞은 편에 오락실이 있는 건 좋은데, 구비된 게임기가 죄다 싸구려이기 때문에 작동할 때 소음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그곳 역시 개방식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뛰어놀면 사방에 천둥 번개가 치는 소리가 울릴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저녁을 즐긴 산차 식당에는 불금 저녁 6시인데 손님이 우리 포함 딱 두 테이블 밖에 없었다. 쉐프들도 손님이 왜 오지 않을까 근심하는 얼굴로 가끔씩 바깥으로 나와 두리번거렸다. 기실 네 개 층이 전체가 나름 고급진 식당으로 꽉 들어 찼기 때문에, 인테리어만 화사하지, 귓가에서 쿵쾅대는 맛도 그저 그런 식당으로 손님들이 발길을 옮기지 않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유리벽이 설치된 맞은 편 한국식 고깃집에 손님이 더 많았다. 외벽에는 레이져 쇼가 펼치지고, 화장실은 청결할 뿐만 아니라 향기까지 나며, 일설에는 구청장이 나서서 설계한 분수쇼가 펼쳐지는 고급 쇼핑센터가 불금에도 황량한 건 내부 배치에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에게헤 쇼핑센터 사장도 이곳이 개장할 때부터 부유한 고객들이 생각보다 많이 오지 않을 거라 예상해서 건물의 절반을 인근 주민들이 주로 즐길 수 있는 식당가로 계획하고, 심지어 영어 학원이나 펜싱 도장이라도 들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 거리에 이미 식당이 바글바글하고 개중 절반은 매출이 신통치 않은데도, 쇼핑 센터를 또 식당가 위주로 운영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은 실책이 아니었을까. 



에게해 쇼핑센터 꼭대기 8층에는 서점과 미술관이 있다. 꽤 격조있게 꾸몄다. 문화 활동은 상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한다. 서점 앞에 인터넷 플랫폼 요쿠优酷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여행侣行, 즉 커플 여행기라는 프로그램이 책으로 나와서 입구 근처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역시 책 판촉활동의 정점은 시진핑의 국정 선전물이었다. 물론 오바마도, 문재인도, 힐러리도, 트럼프도, 심지어 안철수도 자신의 정견을 내세우는 책을 출판하기 때문에 시진핑의 선전물 자체에는 가타부타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디자인이 좀 많이 촌스럽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내는 정치 선전물의 표지는 미적 감각이 있다. 그래야 독자들을 끌어모을테니까. 반면에 시진핑의 것은 촌스럽기만 했다. 베이지 색 표지 한가운데 마치 떠오르는 태양처럼 시진핑 얼굴을 뽀샵처리한 표지는 그것이 중국의 유일한 정치 선전물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물론 이는 중국인들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저 책을 여러 나라 말로 번역했다는 것은 세계 사람들에게 중국의 정치를 선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겉표지가 저래서야 누가 관심을 가질까. 하기사 거꾸로 민주주의 국가의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본인도 한 번 탐독해보고 싶어졌으니까. 


화려한 분수쇼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한국인 거리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카카오 커피집이 폐업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고, 심지어 드라마의 배경 장소로 활용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는데 몇 주 사이에 폐업했다. 특별한 개인적인 사정때문에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에 가게세를 갑자기 올리는 둥의 일반적인 이유때문에 폐업했다면, 다른 가게들의 운명도 아마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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