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고고한 사람》과 유학의 수양론

by 화목란 바라기

예전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재탕했습니다.




유학의 수양론에는 뜬구름 잡는 말이 많다.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는 영어 개념에 더욱 익숙하기 때문에 한문으로 서술된 유학 원전은 훨씬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것이 유학이 한국의 집단주의적 병폐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식으로 여겨지게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했을듯 싶다. 그런데 마침 얼마전 유학의 수양론으로 삼으면 제격인 책을 발견했다. 바로 사카모토 신이치가 그린 《고고한 사람》이라는 만화가 그것이다. 이에 간단하게 《고고한 사람》의 내용을 유학의 수양론을 곁들여서 소개하려고 한다.



《고고한 사람》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유학의 기본 개념인 인仁에 대해서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德不孤,必有邻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반드시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논어论语-이인里仁》


그런데 논어에서는 이웃의 존재가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왜 덕을 닦아야 하는 것일까? 이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里仁为美, 择不处仁, 焉得知?
사람답게 사는 곳이 아름다우니, 사람답게 사는 곳에 머물지 않으면 어찌 똘똘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논어论语-이인里仁》


여기서도 사람답게 사는 것(里仁)이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아름답다고 했다. 아름다운 삶과 행복한 삶은 같은 뜻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항상 입에 오르내리던 반 고흐가 누구보다도 불행했던 삶을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에 공자의 제자들은 사람다움이란 무엇인지 물었으나(問仁) 공자는 다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을 뿐이다.


중궁이 인[仁]에 대해 물어보았다.
仲弓問仁。
공자가 말했다.
"문을 나설 때는 큰 손님을 대하듯이, 누구에게 일을 시킬 때는 큰 제사를 맡은 것처럼 하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마라. 바깥 사회에서 서로 원망이 없다면, 가족 안에서도 서로 원망이 없을 것이다."
《논어-안연顏淵》



역지사지의 마음가짐, 즉 동정심은 공자가 제시한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만화 《고고한 사람》의 주인공 모리 분타로 역시 동급생이 자살했을 때 이를 막지 못했던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무시했겠지만, 모리는 마치 자기가 죽었어야 했던 양 자살 시도를 한 친구를 동정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 재수없는 일이 모리때문에 벌어졌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만약에 모리가 이 사건은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당당하게 나섰다면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모리는 남들의 비난을 당연하다고 여겨 스스로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자책하게 되고, 급기야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모리가 전학온 학교에서 새로 만나게 된 동급생 미야모토의 도발을 받아들여 학교의 담벼락을 오르면서, 학교의 옥상으로 향하는 길을 막은 툭 튀어나온 행을 향해 죽음을 도외시하고 점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가까스로 행을 잡는 순간 모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산에 오르니 사바세계에서 벗어나서 하늘과 동화되어 가이없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모리는 학교 옥상 등반 사건을 계기로 클라이밍부에 입부한다. 그러나 같은 부원인 유미가 클라이밍부 등산 활동 중 조난을 당하고, 미야모토는 무기 정학을 당한다. 이 역시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던 모리에게 저널리스트 쿠로사와는 설산은 인간세계의 더럽고 안 좋은 기억을 전부 씻어준다고 등반해보라고 유혹한다. 비록 쿠로사와가 모리의 야츠카타케 설산 등반을 취재해서 돈을 벌 속셈이었지만, 그의 권유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었다. 쿠로사와는 대학 클라이밍부 설산 등반에서 여자 친구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절벽으로 떨어진 이후로 그 사건이 모두 자신때문이라는 중상모략에 시달렸다. 결국 쿠로사와는 남들을 등쳐먹는 삶을 택했고, 평범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모리가 고독을 추구하게 된 원인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챈 쿠로사와는 모리의 고등학교 클라이밍부 선생님이자 자신의 대학 후배인 오니시에게 고독한 산이야말로 생명을 주는 곳이라고 했다. 오니시는 그 때까지 산은 위험한 곳이나 극복해야만 하는 장애물로 인식했었다. 그러나 모리가 죽음을 도외시하고 야츠카타게를 오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몰랐던 등산의 의의를 깨달았으며, 지금까지 자신이 모래산을 등반했을 뿐이라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혼란에 빠진 오니시는 떨어지는 바위를 피하지 못하고 산이여 내가 틀렸던 건가라고 내뱉으며 죽는다.


오니시는 혼자서는 산을 탈 수 없다고 믿었다. 줄을 잡아줘야 하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일상에서도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모리도 일생의 목표인 K2 동벽을 위해서는 유력자에 연줄을 댄 부유한 등반가 니노미야에게 의지해야 했다. 니노미야는 K2 동벽 공략 이전에 일본 북 알프스 겨울 종주를 계획한다. 코마츠 부대장이 이끄는 북 알프스 겨울 종주는 등산도 사회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꼰대 코마츠가 우두머리인 등반대는 전형적인 연공서열 조직의 모습을 띄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원들끼리 벌어지는 암투 속에도 모리는 여전히 미움받고, 바보 취급 받고, 상처 받는다. 또한 등산을 하지 않을 때 모리는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입에 풀칠하는데,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 조건은 마치 산 절벽을 딛고 서있는 것과 같다. 이를 견디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은 눈보라를 헤치고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는 것과 같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험난한 산행이나 사회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대개 다른 사람들과 상부상조를 해야한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은 종종 본말전도되는 법이다. 일상에서 많은 이들은 단 한 번 뿐인 목숨을 아름답게 가다듬을 생각은 접어두고 어떻게 인간 관계만 잘 풀어갈지 골몰하고, 급기야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여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만화 《고고한 사람》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등장 인물들이 산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서 산행을 택한다. 모리의 동급생 미야모토는 같은 반 친구인 유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산을 타기 시작했지만, 그녀와의 연결이 끊어지자 양아치가 된다.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산행을 시작한 니이미는 북 알프스 겨울 종주에서 불귀의 객이 된다. 마지막으로 모리와 같이 K2 동벽을 오르던 타케무라는 자신의 업적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약을 주사하기도 하지만, 결국 조난당해 죽는다. 그래서 산은 모리에게 묻는다. 평생의 단독행을 맹세하겠냐고 말이다. 그래야 네 목숨을 보장하겠다고 말이다.




人不知而不愠,不亦君子乎。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 - 학이學而》


君子依乎中庸,遯世不見知而不悔,唯聖者能之。
군자는 중용, 즉 평상의 도리, 천명의 당연함을 따를 뿐이다. 세상을 등지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는 경지는 성스러운 이만 가능하다.
《중용中庸》




모리는 단독행을 맹세했지만, 하루는 산 아래의 자신이 몸담은 대학에 들렸다가 잃어버린 청춘을 회고하고 야수가 되었다며 슬퍼한다. 그런 자신을 아름답다고 말해준 하나에게 모리는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이는 모리에게 낭가파르바트의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얼음을 마주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 뿐만 아니라 모리에게는 동급생 유미, 같은 계약직 직원인 코보리, 그리고 니이미의 아내 모모라는 여성들이 자신을 도구로만 간주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삶은 눈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는 산을 등반하는 것과 같다. 방향을 잘못 잡거나, 발을 헛디디면 크레바스로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결혼도 목숨을 담보로 삼은 일종의 선택지이다. 그러나 등산이나 일상의 삶이나 후퇴라는 선택지는 죽음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용기를 내고 전진하는 수 밖에 없다. 다행히 하나는 모리에게 사바 세계로 통하는 동앗줄을 다시 내려준다. 모리는 살아서 하나와 자식을 다시 보기 위해, 일생의 목표였던 K2 동벽 공략을 포기하고 하강하려 한다. 하지만 모리가 단독행을 포기한 순간, 산은 하산할 때 필수 도구인 자일을 뺏어감으로써 맹세를 저버린 댓가를 지불하게 했다. 이윽고 모리는 산소 결핍으로 정신을 잃지만, 그의 본능은 정상을 쉬지 않고 기어 오르게 한다. 모리는 정상에 올라 신을 영접하고 생을 포기했지만, 다른 능선에서 설치된 자일에 몸을 싣고 하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클라이머로서의 인생은 막을 내렸다.




사람다움이란 우선 고난을 겪게 된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仁者先難而後獲,可謂仁矣。
《논어 - 옹야雍也》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처럼 역지사지하는 동정심은 자칫 남에게 이용당하거나, 심지어 손가락질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에 타인과의 관계나 평판이 어떤지 너무 집착하다 보면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은 요원할지도 모른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집단과는 상관없이 홀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자신만이 지각한 것을 신중히 살펴야 한다.
故君子慎其獨也。
《중용中庸》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나부터 수양을 잘 이루어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저 유명한 《대학大學》의 첫 구절은 개인이 집단의 영광을 위해 수양을 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령이기 보다는, 개인이 수양을 충분히 닦았을 때 비로소 집안과 나라, 그리고 천하가 평화로워질 수도 있다는 사회과학적인 이론을 제시한 것에 가깝다. 지금까지 위에서 소개한 《고고한 사람》의 주인공 모리 분타로의 삶은 이 이론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는 비록 지금 한국에서 통용되는 서양에서 도입된 “개인주의” 개념과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을지라도, 유학 이론이 한국의 집단주의적 병폐를 일으킨 주범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유가의 수양론은 근대 개인주의를 낳은 서양만큼 치열하게 개인에 대해 논하고 탐구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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