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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Feb 17. 2022

인구보다 총기 수가 더 많은 나라

총기는 과연 미국인의 생명을 보호하는가?

미네소타에서 정신과 1년 차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한 아홉 살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응급실로 왔다. 아직 초등학생인 소년은 작년부터 심각한 우울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며칠간 자살 생각이 너무 심해져 병원에 온 것이었다. 환자를 문진하고 교수님께 보고를 하던 중, 교수님이 불현듯 나에게 물었다.


혹시 집에 총기가 있는지 물어봤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한국에서 온 나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레지던트를 하기 직전에 1년간 머물렀던 보스턴이 속한 메사추세츠는 미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총기 규제가 강한 주였기 때문이다(물론 그 곳에서조차 집 바로 옆 수퍼마켓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머뭇거리다가 교수님께 질문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다.  


“나 선생. 여기는 미국 중부야. 여기서는 거의 모든 집에 총기가 있다고 보면 돼. 다시 가서 물어보고 와. 그리고 총기가 있다면 총기 잠금장치가 있는지도.”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여기는 미국이었지, 게다가 동부보다 총기 소지가 훨씬 자유로운 중부란 걸 잊었구나.. 혼잣말을 했다. 환자와 환자 아버지에게 다가가 총기 소지 여부를 묻자 아버지는 마치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총 있지요. 제 껀 권총, 기관총 등 여러 개구요. 얼마 전에 얘 생일이어서 권총 하나를 선물해 줬는 걸요.
아버지는 아홉 살 소년에게 생일 선물로 권총을 선물했다(출처: Stanford Med)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데 아까 맞은 머리를 더 세게 연달아 맞은 것처럼 띵했다. 자살 생각을 할 정도로 우울증상이 심각한, 그것도 아홉 살 아이에게 총을 생일 선물로 주었다니. 생각만으로 아찔했다.


미국의 총기 문제는 한국에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이 문제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 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경악할 것이다. 미국의 민간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는 약 3억 9천3백만 개로 집계되는데, 이는 전 세계 민간인들 총기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숫자이다.(1) 즉, 미국 인구 한 명당 한 개 이상의 총기를 가진 셈이다.(1)

미국의 총기 수는 미국 전체 인구수를 넘어선다(출처: The Times)

미국에서는 모든 병원 직원들에게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해 정기적으로 교육시킨다. 병원에서 총기 난사가 발생할 경우 어떤 식으로 대피를 하고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지를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우게 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어른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어린아이들조차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모의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2)

뉴스 기사를 통해 아이들이 책상 밑에 숨어있는 모의 훈련을 하는 사진을 볼 때면 딸아이가 생각나 마음이 더 아프다. (출처: Fatherly)

실제로 2012년에 코네티컷의 한 초등학교에서 6-7 살 아이들 스무 명, 그리고 십 년 후인 2022년에는 텍사스에서 9-11세 아이들 19명이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사건들이 있었으니 총기 난사 사건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실존하는 위협이다. 이렇게 수많은 아이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총기규제를 강화시키는 법은 번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전 글에서도 다뤘듯이, 자살을 예방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는 자살 수단을 제한하는 방법(means restriction method)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총기와 관련된 규제를 강화시키는 것은 늘 반대세력에 직면한다. 전미 총기 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가 수많은 정치인들을 로비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약 5백만 명의 회원을 가진, 미국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이익단체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그나마 희망적인 사실이라면, NRA의 회원수가 2018년 6백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라는 사실이다.(3) 

전미 총기 협회(NRA)는 강력한 정치 집단이다(출처: Axios)

이 NRA에서 쌍수를 들며 반길일이 어제 발생했다. 인디애나의 한 쇼핑몰 총기 난사 현장에서, 세 명을 살해한 괴한을 22세 청년이 자신의 총으로 사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적법한 총기로 살인마를 제압했으니, NRA가 늘 주장하는 자기 방어권을 몸소 실현한 셈이다.

  

그렇다면 총기는 과연 미국인의 생명을 보호하는가?


총기 사건 하면 우리는 앞선 총기 난사 사건들과 같은 살인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총기로 인한 사망 사건의 60%는 실제로 자살로 인한 사망이며, 이는 37%에 해당하는 타살보다 1.5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3) 총기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 85%가 사망한다고 한다.(4) 가장 흔한 자살 시도 방법인 약물 과복용의 치명률이 3% 이하인 것을 생각하면,(5) 총기가 얼마나 위험한 자살 수단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총기가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옹색한지도. 


개인적으로 미국에 온 게 가장 후회가 될 때가 바로 총기 사건을 접할 때이다. 지구 상에 어떤 나라보다 많은 민간인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 시나리오를 대비해서 대피 연습을 하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혹자는 마치 교통 사고처럼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 총기 문제가 미국 사회 전반에 끼치는 불안감은 너무 크다. 


덧 붙이는 글. 

이쯤 되면 치안이 좋기로 소문난 나라인 한국에서 사는 것이 축복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축복맞다 사실). 나 또한 한국의 치안이 그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자살을 연구하는 한국인 정신과 의사로서 외면하기 힘든 사실은 총기가 허용되지 않는 한국의 자살률(2019년 10만 명당 26.9 명)이 이처럼 총기 문제가 심각하고 치안이 불안한 미국에서의 타살률(2019년 10만 명당 5 명)과 자살률(2019년 10만 명당 13.4)을 합친 수치의 1.5배에 달한다는 슬픈 현실이다.(6,7)  


참고문헌

1.     Estimating Global CivilianHELD Firearms Numbers. Aaron Karp. June 2018. http://www.smallarmssurvey.org/fileadmin/docs/T-Briefing-Papers/SAS-BP-Civilian-Firearms-Numbers.pdf. Accessed Aug 20th, 2021.

2.  https://www.cnn.com/interactive/2021/03/us/school-shooting-lockdown-drills/

3.  https://www.cbsnews.com/news/nra-national-rifle-association-membership-revenue-2022/

4.  Pew Research Center. What the data says about gun deaths in the US. 2019.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19/08/16/what-the-data-says-about-gun-deaths-in-the-u-s/. Accessed Aug 20th, 2021.

5.  Harvard Public Health. Guns & suicide: The hidden toll. https://www.hsph.harvard.edu/magazine/magazine_article/guns-suicide/. Accessed Aug 20th, 2021.

6.  WISQAR.

7.  보건 복지부. 2021 자살 예방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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