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저자 후기
공감에 가장 중요한 뇌 부위는 어딘가요?
최근 가진 온라인 북 토크에서 나온 질문이다.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확률(probability)'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뇌과학에 대한 부분이라면 더더욱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나는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어렸을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읽으며 생긴 습관이 있다. 등장인물들에 내가 친숙한 할리우드 배우들을 대입하는 것이다. 가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 때, 드미트리는 브래드 피트, 알료샤는 맷 데이먼을 상상하는 등. 생각해보면 유치하지만, 중학생이 그 두꺼운 책들을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러시아처럼 심리적으로 먼 나라의 등장인물들에게 그나마 친숙한 외국인들을 대입해야 감정이입이 더 쉬웠다고 변명하고 싶다. 비록 꼼수(?)를 썼지만 한국의 중학생에게 머나먼 러시아의 이야기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듯, 미국의 백인들 또한 지구 반대편을 배경으로 한 <파친코>를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놀라운 일이다. 모두, 인간의 공감 능력 덕분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각기 타고난 지적, 신체적, 정서적 능력이 다르듯이 공감 능력 또한 그들의 유전과 환경에 따라 다른 스펙트럼을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에 감정 이입하고,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 나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 없어 보이는 방부제 인간 같은 <탑건>의 톰 크루즈를 보며 두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또한 우리가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공통점 하나 없어 보이는 다른 나라의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하며 울고 웃는 우리들은, 정작 나와 문화, 환경, 외모 등 많은 것이 유사한 한국의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나는 '의지의 차이'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공감에는 감정이입을 하는 능력인 '정서적 공감'과 의지가 필요한 '인지적 공감'이 있다. 우리가 오롯이 책 한 권을 읽거나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일에도 의지가 필요하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책을 온라인, 혹은 서점에 가서 구매를 해야 하고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관에 가야 한다. 그리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시간가량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오롯이 집중해야만 한다.
내가 앞선 질문에 전전두엽이라는 말 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전전두엽은 목적이 분명한 활동을, 의지를 내서 실행할 때 활성화된다. 그리고 실제로 전전두엽이 손상된 사람들에게서 공감 능력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보고 된 바 있다. (물론, 공감에 관여하는 뇌 부위는 다양하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위는 따로 있다) 하지만 우리가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답한 것이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에 대한 주장 때문에 묻힌 감이 없지만, 내 책은 ‘공감’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서는 빠졌지만, 나의 첫 외래 환자는 맨해튼의 고급 콘도에서 도어맨으로 일하는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와 유사한 일들을 하는 직업이다. 만난 지 두세 달쯤 되었을까. 그는 나와 상담을 하던 중에, 트럼프 지지자들의 언어로 이민자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놀랐던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내가 이민자라는 사실을 대놓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뻔히 이민자로 보이는 나를 앞에 두고 그런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나는 미네소타의 한 시골 마을의 병원에서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었다. 그날 응급실에는 공황발작(panic attack) 혹은 과도한 불안 증상으로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왔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환자는, 애견 구호 단체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본인이 일하는 비영리 단체의 정부 지원이 끈길 것을 걱정한 나머지, 응급실에 실려왔다.
그날 새벽, 응급실 당직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두 명의 젊은 백인 남자가 내가 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병원의 청소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던 그들은 엘리베이터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다가, 문이 열리고 내가 보이자 약속한 듯 입을 다물었다.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의 2016년 대선 구호)"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들은 조용했지만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겨우 4층 남짓을 내려가는 그 엘리베이터에서의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그날의 기억이 진료실에 앉은 나를 마치 PTSD 증상처럼 괴롭혔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충격을 받은 두 번째 이유는, 그날의 대화가 내가 트럼프 지지자와 처음으로 나눈 대화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일주일에 한 시간씩 매주 이어진 치료 과정에서 우리는 그 날의 대화를 여러 번 복기했다. 우리는 여느 환자와 다름없이 서로 연결되었고, 또 공명(resonate, 악기들이 서로에게 울리는 것) 할 수 있었다. 나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는 눈물을 보였고, 나는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 내 눈이 따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분열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취사선택해서 읽고, 보고, 믿게 되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15퍼센트의 미국인들이 친구들과 정치적 관점의 차이로 절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1)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인들의 80퍼센트 가까이가 자신과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두지 않거나, '거의 두지 않는다'라고 보고했다.(2) 공화당 지지자의 80퍼센트는 민주당이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생각한다. 같은 조사에서 80퍼센트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이 인종차별주의자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 한국에서 유사한 연구가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비슷한 추세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분열의 사회가 되어가는 걸까. 근본적으로 우리가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2009년,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공감 능력은 30년 전에 비해 40퍼센트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4)
놀랄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내 책이 정신 질환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타인들을 만나고 연결된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환자 사례들이 나왔을 뿐, 내 책은 공감과 연결에 대한 책이라고, 그렇게 소개하곤 한다. 정신 건강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보거나, 한 권의 책을 읽는데 들이는 노력을, 내가 겸상조차 하기 싫은 누군가에게 쏟을 순 없을까. 내 책은 한국 사회에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책이었다.
우리가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쏟는 의지만큼만이라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그렇게 '의지'를 가지고 내 책을 읽은 누군가가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책이 될 수 있다면
참고 문헌
(1)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American The state of Aerican friendship: Change, challenges, and loss. June 8, 2021.
(2) Pew Research Center. Survey of U.S. adults conducted July 27-Aug 2, 2020.
(3) PRRI. Dueling realities: Amid multiple crises, Trump and Biden supporters see different priorities and futures for the naion. 10.19.2020.
(4) Konrath SH, O’Brien EH, Hsing C. Changes in dispositional empathy in American college students over time: A meta-analysi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2011; 15(2): 180-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