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4쇄에 부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내 환자들을 위해 글을 쓴다.
4쇄에 수정할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가, 이 문장을 읽고 문득 죄책감이 몰려왔다. 서문에 적은 이 구절은 절반 정도는 맞고, 절반 정도는 틀리다. 우선,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는 이타적 동기도 물론 있겠지만, 자기만족, 공명심 등등 다양한 이기적인 목적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큰 이유가 있다. 내가 책을 낸 목적 중 하나가 정신 질환을 앓는 분들에 대한 낙인과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나를 신뢰한 환자들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통해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동의를 구한 환자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가령 응급실에서 잠시 스친 환자의 경우 – 이런 경우는 더더욱 환자에 대한 내용은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내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 사실, 동의를 구한다 해도 의료 윤리적 딜레마가 사라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환자-의사의 권력 구조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개 의사 쪽으로 기울어져있고 (환자는 자신의 건강을 의사에게 맡긴 상태이기 때문에), 그처럼 수평적이지 못한 관계에서는 의사가 동의를 구했을 때 이를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정신과 의사 작가인 어빈 얄롬의 지침들을 따르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어빈 얄롬은 환자 자신도 그 글을 읽고 자기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세부 사항을 많이 각색한다고 했고, 나 또한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책 앞에는 ‘이름, 나이, 성별 및 세부사항’을 바꿨다고 간단하게 썼지만, 사실은 굉장히 많은 각색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의 짐이 남았다. 그 부담과 죄책감이 갈수록 커져, 책이 나오기 2주 전쯤부터 나는 자주 잠을 설치곤 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출간 전날에는, 내 책이 잘 되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잘 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때 내 마음은 그랬다.
책이 나오자마자 양극성 장애를 앓는 한 기자분이 쓴 내 책에 대한 후기를 접하게 되었다 (http://www.mindpo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7119). 자그마한 위안이 되었다. 실제로 십수 년간 정신과 진료를 받는 분이 내 책을 읽고 좋게 봐주셨다니, 마치 내 환자들이 나를 용서해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는 철저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단순히 의료 윤리적인 문제 외에도,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앞에 앉은 환자가 환자가 아닌 ‘글감’으로 인지가 된다면, 나는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낼 때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의 후속 편은 없을 것이라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허영심과 공명심은 마약과 같아서, 끊겠다는 혼자만의 결심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분들께 담배나 술을 끊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것을 권하듯이, 한 번쯤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