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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Nov 16. 2022

오래된 반성문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4쇄에 부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내 환자들을 위해 글을 쓴다.



4쇄에 수정할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가, 이 문장을 읽고 문득 죄책감이 몰려왔다. 서문에 적은 이 구절은 절반 정도는 맞고, 절반 정도는 틀리다. 우선,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는 이타적 동기도 물론 있겠지만, 자기만족, 공명심 등등 다양한 이기적인 목적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큰 이유가 있다. 내가 책을 낸 목적 중 하나가 정신 질환을 앓는 분들에 대한 낙인과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나를 신뢰한 환자들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통해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동의를 구한 환자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가령 응급실에서 잠시 스친 환자의 경우 – 이런 경우는 더더욱 환자에 대한 내용은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내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 사실, 동의를 구한다 해도 의료 윤리적 딜레마가 사라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환자-의사의 권력 구조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개 의사 쪽으로 기울어져있고 (환자는 자신의 건강을 의사에게 맡긴 상태이기 때문에), 그처럼 수평적이지 못한 관계에서는 의사가 동의를 구했을 때 이를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정신과 의사 작가인 어빈 얄롬의 지침들을 따르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어빈 얄롬은 환자 자신도 그 글을 읽고 자기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세부 사항을 많이 각색한다고 했고, 나 또한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책 앞에는 ‘이름, 나이, 성별 및 세부사항’을 바꿨다고 간단하게 썼지만, 사실은 굉장히 많은 각색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의 짐이 남았다. 그 부담과 죄책감이 갈수록 커져, 책이 나오기 2주 전쯤부터 나는 자주 잠을 설치곤 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출간 전날에는, 내 책이 잘 되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잘 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때 내 마음은 그랬다.


책이 나오자마자 양극성 장애를 앓는  기자분이   책에 대한 후기를 접하게 되었다 (http://www.mindpo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7119). 자그마한 위안이 되었다. 실제로 십수 년간 정신과 진료를 받는 분이  책을 읽고 좋게 봐주셨다니, 마치  환자들이 나를 용서해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는 철저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단순히 의료 윤리적인 문제 외에도,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에 앉은 환자가 환자가 아닌 ‘글감으로 인지가 된다면, 나는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후속 편은 없을 것이라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허영심과 공명심은 마약과 같아서, 끊겠다는 혼자만의 결심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분들께 담배나 술을 끊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것을 권하듯이,  번쯤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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