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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Apr 16. 2022

슬픔의 무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애도의 무게에 대하여

존을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생후 일 년도 채 되지 못한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그는 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악몽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떠나보낸 이후로 하루도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다 말했다. 그 슬픔은 아이를 잃은 기일이 되어가면 극도에 달해서 그 무렵에는 늘 자살 생각에 시달리곤 했다. 첫째 아이를 하늘로 보낸 후 태어난 두 명의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아이들이 그의 슬픔을 덜어주진 못했다. 그는 여전히 첫째를 보낸 그날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곤 했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에게도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존과 이야기를 나누다, 처음으로 그가 아이를 잃은 직후 몇 차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저도 아끼던 반려견을 잃어본 경험이 있어요.

정신과 의사가 그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의사가 자신의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존 본인도 강아지를 잃어봐서 그 슬픔을 이해하지만, 막 갓난아이를 잃은 아버지로서 듣게 된 그 말은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위로했다.


존과 같은 날 만난 70대 할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로 불과 몇 주 전, 수십 년 전 군대에서의 트라우마의 기억이 최근에 다시 떠오르기 시작해 우리 클리닉을 처음 찾아왔다. 평소에 비교적 밝고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던 그는 오늘따라 어쩐지 침울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고 묻자 그는 이내 참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티슈를 건네고, 70대의 할아버지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지는 걸 한동안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잠시 감정을 추스르더니, 얼마 전에 본인이 아끼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이런 일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우는 모습 보여서 부끄럽네요.


나는 그의 슬픔에 공감해주고, 그에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약한 모습이 아니라고, 타인 앞에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증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평소 같으면 아마 나도 그에게 '저도 반려견을 여러 번 보냈어요.'라고 내 경험담을 말해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존이 직전에 본인의 아이의 죽음을 반려견의 죽음에 비유한 경험이 떠올라,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애도의 무게를 잘 표현한 작품(출처:포틀랜드 미술관)

슬픔에도 무게가 있다. 어떤 슬픔은 너무 무거워서 사람을 한 없이 침잠하게 만든다. 존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를 떠나보낸 바다 밑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슬픔의 무게를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할아버지도 아마 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연의 슬픔을 안고 한동안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 깊은 연못에서, 존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머물러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아지를 잃은 그 정신과 의사의 슬픔 또한 갓난아기를 잃은 존의 슬픔보다 가벼웠다고 말할 수만은 없을 지도 모른다. 아마 그 의사는 본인이 잃은 가장 소중한 생명에 대한 경험을 나눔으로써 존의 슬픔에 공감해주고 싶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 대한 '사랑' 고인을 떠나보내는 순간, '애도' 탈바꿈한다. , 애도는 상실  경험하는 사랑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내가   있는 일은,  새로운 사랑의 여정을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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