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해서 물어봐주세요.
다음 내용은 미국 자살 예방 협회에 자살 유가족인 새라 애쉬 (Sarah Ash) 씨가 나눈 이야기를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자살로 8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이 한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멈칫하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이어지는 반응은 주로, 머리를 갸우뚱하며, “아.. 참 안되셨어요”와 같은 연민 섞인 말이에요. 사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얼굴에 이미 그들의 가치 판단이 다 드러나거든요.
제가 저의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들은 다음과 같아요.
“아버지가 어떤 방식으로 그러셨어?”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기로 선택하신 걸 원망할 때도 있니?”
“알지? 너네 아버지 그렇게 돌아가셨기 때문에 천국에 가시지 못한다는 거”
이 질문들은 제가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은 것들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입에서 같은 질문이 나올 때면 저는 충격을 받아요. 이런 질문들은 저를 바로 방어 태세로 전환하게 만들거든요. 만약 그 사람이 저에게 하는 첫 질문이, “아버지가 어떤 방식으로 그러셨어?”라면, 저는 그들이 저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저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아요. 저는 그들이 오직 아버지의 죽음에만 관심이 있고, 그의 생애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는 사람들이 아버지가 죽음의 방식을 “선택”한 것에 대해 아버지를 원망하는지 물어보면, 더더욱 방어적이 돼요. 물론 저도 가끔은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아버지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저는 그가 자살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자살로 죽는 것은, 암으로 죽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제 아버지는 심각한 정신 질병이 있었어요. 그것으로 인해 제 아버지는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의 삶의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정신질병과의 사투였어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런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그를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이에요. 그들은 아버지가 죽은 방식으로, 그의 생애를 순식간에 재단하곤 해요.
저는,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또는 그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묻기보다는, 저에게 제 아버지가 어떻게 “살았었는지”에 대해 물어봐주길 바래요.
그의 이름을 물어봐주세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봐주세요. 제가 아버지와 가장 즐겨하던 놀이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요. 저에게 그가 어떻게 지구 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봐주세요.
만약 당신이 저의 아버지를 생전에 알았다면, 당신이 아버지를 좋아했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저에게 어떤 것이 아버지를 떠올리게끔 하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어느 날 문득, 그가 그리워지곤 하는지에 대해서요. 당신이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당혹스러운 이야기들에 대해서 다 말해주세요. 저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저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길 바래요. 애도는, 당신이 여전히 그리워하고, 그리워하길 영원히 멈추지 않을 사람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잊은 것처럼 보이면 매우 고독한 일처럼 느껴져요.
저는 제가 아버지의 모든 존재 자체를 방어해야 한다는 느낌 없이, 제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아버지는 자살로 돌아가셨어요”라는 문장 뒤에, “그는 거의 평생을 정신 질병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로 힘들어하셨어요”라고 설명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해요.
저는 사람들이 정신 질병과 자살에 대한 낙인을 넘어서, 제 아버지가 얼마나 놀랍게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게 제가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해줬으면 하는 유일한 바램이에요.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때로는 정신과 의사 동료들 조차 불편해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하물며 정신 건강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의 거부감이야 오죽할까. 그럼에도 자살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하나다. 자살이 우리 생각보다 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 대중의 20% 이상이 평생에 걸쳐 주변의 누군가 (친구, 지인, 가족)를 자살로 잃는다고 한다 (1).
개인적으로, 나 또한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잃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한 사람들이었고, 또 다른 이들은 멀게나마 알던 지인들이었다. 내가 팬으로서 좋아하던 가수들, 배우들도 있었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유가족들을 위해서 내가 친구로서, 정신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남들이 불편해하더라도) 계속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불편한 글이 한 사람에게라도 와 닿는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암에 대해서도 한 때 엄청난 낙인이 있었다. 누군가가 암에 걸리면 사람들은 진단을 숨기곤 했으며, 암 (cancer)이란 용어를 쓰지 않고, "C word"라고 표현했던 때도 있었다. 에이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언젠간,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서도 낙인이 사라져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 이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참고 문헌
(1) Andriessen K, Rahman B, Draper B, Dudley M, Mitchell PB.
Prevalence of exposure to suicide: A meta-analysis of population-based studies.
Journal of Psychiatric Research. 2017, 88. 113-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