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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Apr 10. 2021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신 건강

이제는 침묵을 깨고 정신 건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

"다음 연구 주제로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신 건강이 어때?"


나의 현재 연구 멘토 중에 한 명인 노교수님이 나에게 불과 몇 달 전에 물었었다. 그 당시, 나는 가급적이면 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왜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신 건강은 그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혐오 범죄에 대한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지금까지, 3,800건 이상의 혐오 범죄가 보고 되었고, 여성들의 피해가 남성에 비해 두배 넘게 흔하다고 한다.(1) 급기야 3월 16일에는,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에서 6명의 아시아계 여성이 총기 난사 사건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연히 미국 내 아시아계 인들의 분노가 이어졌고, 전국 각지에서 '혐오를 멈출 것'을 촉구하는 집회들이 진행되었다.

6명의 아시아계 여성들의 죽음은 전국적인 집회로 이어졌다 (출처: The Guardian)

정신과 의사로서,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바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정신건강이다.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들은, 엄밀히 말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의 진단기준에 속하는 트라우마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정신의학의 진단기준인 DSM-5는 PTSD를 일으킬 수 있는 트라우마를 매우 제한적으로 설정해놓았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이,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 혹은 타인이 당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조차도 PTSD와 유사한 증상들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였다.(2) 또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들이 많아질수록, 우울, 불안, 약물 중독은 물론, 자살 생각 또한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2020년 3월 이후, 백인 들에 비해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정신 건강이 더 악화되었음을 보고한 연구가 있다.(3)


이와 같이 최근에 불거진 아시아 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1850년대에 계약직으로 처음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이 미국인들에게 '경제적이고 도덕적인 위협'이 된다며, 중국인들의 이민을 금지하는 법이 1852년에 발의되었다. 또한 1875년에 발의된 페이지 법안 (Page Act)은, 중국인 여성들이 미국으로 '외설적이고 비도덕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민을 온다고 하며, 그들의 입국을 금지시켰다.(4) 이러한 초기의 법안들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특히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들은 강화시켰다. 아시아계 여성들에 대한 과도한 성적 대상화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 21세기가 된 지금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이미지는, 조용하게, 열심히 일하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범적인 소수민족 (model minority)'이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일을 겪더라도, 이에 대해 저항하거나 불만을 표하기보다는 침묵하기를 강요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또한, 아시아 계 미국인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많은 것은 사실이나, 모든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가령, 뉴욕시의 아시아계 미국인의 25퍼센트는 빈곤층에 해당하며, 노년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빈곤율은 미국 전체 노년층의 빈곤율의 1.5배에 해당한다.(5)


6년 전에, 미국으로 처음 왔을 때, 나는 당시 예일대학교에 계셨던 나의 멘토 교수님과 한국 교민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연구였던지라, 모든 게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교수님은 차근차근 나를 지도해주셨고, 논문이 마무리되어갈 무렵, 나에게 팀 미팅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해보라고 하셨다. 영어로 하는 첫 발표였던 지라, 발표에 앞서 긴장을 많이 했고, 와이프 앞에서 여러 번 발표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계는커녕 아시아 계 미국인도 거의 없는 대중을 상대로 발표를 마치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청중은 당연히 우리 연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몇몇 레지던트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딴짓을 하기도 했다.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여쭈어보았었다. 어떻게 한국 교민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시게 되었느냐고. 당시 부교수였던 교수님은, 엄청나게 바쁘셨었고,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실 때였기 때문에, 그 바쁜 틈을 쪼개서 '아무도 관심이 없는' 교민들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교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었다.


피터야, 네가 커리어를 쌓으면서, 네 커리어를 위해서 해야 하는 연구나 일들이 있고, 커리어 때문이 아니라도, 해야만 하는 연구가 있어. 한국 교민들에 대한 연구는 나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야, 우리 교민들을 위해서.


그 후로 교수님은 다른 대학의 정신과 과장으로 스카우트가 되셨다. 과장이 되신 후 처음으로 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교수님은 과장으로서 처음으로 과 사람들에게 한 발표에서, 한국 교민들 연구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고 하셨다. 그 후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중국계 미국인들에 대한 연구를 잠시 진행하기도 했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 한국 교민들에 대한 연구에서 멀어져 갔다. 내 커리어를 키워나가기도 벅찼기 때문에, 내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교민들에 대한 프로젝트를 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일련의 사태가 발생한 후에, 다시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혐오범죄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글을 같이 써주실 수 있냐고 여쭈었다. 교수님은, 학회지들에서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흔쾌히 받아주셨다. 아시아계 미국인과 한국 교민 정신건강 전문가인 박사님과 함께 급하게 쓴 글을 미국 정신의학회 공식 잡지에 기고했다. 그리곤, 조금 더 길게 쓴 글을 미국 의학 협회 공식 학회지에 제출하였으나, 아마 실리긴 힘들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아시아계 미국인, 더 나아가 한국 교민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교민 사회에서 정신 건강 전문가로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하면 교민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많은 교민들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어도, 문화적, 언어적, 그리고 경제적 장벽으로 인해, 또 정신질병, 정신과에 대한 낙인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바쁜 스케줄을 탓하며 미루었던 일들을 조금씩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에스더 하 재단을 통해 뜻이 맞는 정신과 의사 분들과 함께, 정신과 질병, 치료에 대한 장벽을 낮추기 위한 강연들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더 고민하고, 노력해나갈 예정이다.

에스더 하 재단은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헬프 라인 서비스를 운영한다.

어느 사회나 이민자들은 사회적 약자이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교민들이 교민들을 신경써주지 않는다면, 한국 교민이 아닌 사람들에게 도와달라는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비록 미약할지라도 교민 사회에 도움이 되길 바랄뿐이다.


 





참고 문헌

(1) AP3CON. Stop AAPI hate reports: 2020-2021 national report. 2021; https://secureservercdn.net/104.238.69.231/a1w.90d.myftpupload.com/wp-content/uploads/2021/03/210312-Stop-AAPI-Hate-National-Report-.pdf. Accessed Mar 21st, 2021.

(2) Carter RT. Racism and psychological and emotional injury: Recognizing and assessing race-based traumatic stress. The Counseling Psychologist. 2007;35(1):13-105.

(3) Wu C, Qian Y, Wilkes R. Anti-Asian discrimination and the Asian-white mental health gap during COVID-19. Ethn Racial Stud. 2021;44(5):819-835.

(4) Woan S. White sexual imperialism: A theory of Asian feminist jurisprudence. Washington and Lee Journal of Civil Rights and Social Justice. 2008;14:275-301.

(5) Shih KY, Chang T-F, Chen S-Y. Impacts of the model minority myth on Asian American individuals and families: Social justice and critical race feminist perspectives. J Fam Theory Rev. 2019;11(3):41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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