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작년 가을 무렵부터 같이 일하기 시작한 나의 연구 멘토 중 한 분은 은퇴한 노(老) 교수이다. 평생을 명문 대학에서 있으면서 수백 편의 논문을 낸 그는, 여전히 소일거리처럼 연구를 하곤 한다. 펠로우십을 하며 이제는 은퇴를 한 각 분야의 대가인 노 교수들과 일을 몇 번 함께할 일들이 있었다. 수십 년을 통해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그들은, 은퇴한 지 수년 밖에 지나지 않았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최근에 소셜 미디어에서 이런 글귀를 보았다.
당신이 지금 그토록 목을 매는 일과 직장은, 당신이 무슨 일이 있어 일을 못하게 된다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당신을 대체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너무 일에 집착하지 말라고.
십 대, 그리고 이십 대의 나는 참 끈질기게도 꿈을 찾아 헤매었던 것 같다. 이십 대 초반의 어느 때부터, 나는 정신 건강 문제를 치료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자살을 막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어 졌었다. 그래서,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임상 심리학자를 꿈꾸었다가, 유학에 실패한 후,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 뒤늦게 의학 대학원을 가게 되었었다. 그리고는 처음 꿈을 꾸기 시작한 지 십 년 가까이가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정신과 의사가 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와이프의 직장으로 인해 미네소타에서 뉴욕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때 힘들게 동기들에게 이직을 결심했다고 이야기했을 때, 레지던트 동기가 나에게 해준 말 ("당연히 옮겨야지, 의사는 좋은 직업이지만, 직업일 뿐이야") 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늘 가슴이 뛰는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았고, 꿈을 좇아야만 멋진 것 같았고,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만 할 것 같았던 나에게, 왜 그 말이 그렇게 와 닿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목숨 거는 직장에서 우리는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존재지만, 정작 소홀해지기 쉬운 가정에서의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만약 당장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딸아이의 인생은 참으로 달라질 것이니까 말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도 배부른 소리란걸 안다. 이 직장을 잃으면 사랑하는 가정을 지킬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단지, 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