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성 애도 (Complicated grief)에 대하여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는 긴 산발의 머리를 하고, 야구 모자를 쓴 채, 환자 대기실에서 앉아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일어나며 주섬주섬 옆 자리에 놓아두었던 비닐봉지를 훔쳐 담았다. 그리곤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젊은 시절 잠시 아편계 진통제를 남용한 적 있었지만, 수십 년간 약물을 끊고 살아온 할아버지는, 3년 전, 다시 헤로인 (아편계 마약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가 성심성의껏 간호를 해 주던, 수십 년간 동고동락한 아내가 오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만난 지 세 번쯤 되었을까. 나는 처음으로 비닐봉지에 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순간, 그의 어두운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그는 비닐봉지를 열기 시작했다. 그가 조심스레 내민 오래된 액자에는, 현재 내 앞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쑥한 중년의 남성이 그의 아내와 함께 여행지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이 담겨있었다.
이게 내 아내예요. 아름답죠? 이때가 아마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을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은 아마 우리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슬픔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겪는 애도 과정(grief)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상실을 경험한 소수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속적인 애도 현상을 보인다. 이를 연구자들은 '복합성 애도 (complicated grief)' 또는 '지속적 애도 장애 (prolonged grief disorder)'라 명명했다.
애도를 정신과적 입장에서 보아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미국 정신 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진단 기준인 DSM-5의 개정안에 처음으로 '지속적 애도 장애'가 공식적으로 포함되기로 결정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복합성 애도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장애'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불편해서이다. 복합성 (complicated)이라는 이름은, 영문으로 상처가 났을 때 발생하는 합병증 (complication)에서 기원한다. 즉, 사별을 경험한 후에, 우리가 상실에 적응하는 것을 방해하는 생각, 감정, 그리고 행동들이 마치 상처의 치유 과정을 방해하는 합병증과 같다는 것에서 기원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딸아이 방으로 가요.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요. 잘 지내니? 엄마는 잘 지내.
사랑하는 딸을 꽃다운 이십 대의 나이에 암으로 떠나보낸 그녀는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딸의 방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도 딸의 죽음이 "어제 일어난 일 같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그녀의 하루 일과는 딸의 방에 들러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딸의 임종을 매일 떠올린다고 했다.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약 7-10 퍼센트 정도가 복합성 애도를 경험한다고 한다.(1)(2) 그리고, 이는 자살이나 타살과 같은 죽음의 경우 조금 더 발생 위험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3) 많은 경우, 정신과 의사들도 애도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고 번아웃을 호소하기도 한다.
애도는 워낙 흔하고, 많은 사람이 경험하기 때문에, 누가 치료를 요하는지 구분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증상의 심각성에 따라,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경우 (앞선 환자와 같이 "아직도 그 사람이 떠난 게 어제 같아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흔한 예), 심각한 사회적 기능의 저하/손상, 절망감 또는 자살 생각 등이 있다면, 보다 전문적인 치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복합성 애도를 겪는 사람들의 자살 생각이다. 복합성 애도를 겪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보다 더 자살 생각이 흔하다고 보고한 연구들도 여럿 있다.(4)
복합성 애도의 치료에는, 애도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심리 치료가 효과적이다. 이 중에서 16회기에 걸쳐 진행되는 복합성 애도 치료 (complicated grief treatment)가 가장 효과가 좋은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4)(5) 치료의 최종 목표는 복합성 애도를 경험하는 사람이 현실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청사진을 그릴 수 있도록, 즉 통합된 애도 (integrated grief)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나는 매주 만나, 아내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녀의 임종을 복기하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내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수년간, 그는 단 하루도 아내의 임종 날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했다. 그가 만약 조금 더 빨리 구급차를 불렀다면 아내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구급차가 오는 동안 자신이 심폐 소생술이라도 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되묻고 자책하면서. 그렇게 그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칩거하며, 약물에 의존해서 버텨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억들과 생각을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 치료에 임했다. '아내가 살아있다면, 내가 달라지길 바랄 것이다' 스스로 되뇌면서.
흔히 사람들은 애도를 여행에 비유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떠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된 후에 제자리로 돌아와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하지만 실은 애도란 완전히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어떤 것도 그 사람을 잃은 나를 그 사람을 잃기 전의 나로 돌아가게 만들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애도 과정은 그렇게 새로운 나를 만나고, 고인 (故人)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이 되어간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내 삶이 풍요롭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복합성 애도 치료를 배운 복합성 애도 연구의 어머니와도 같은 캐서린 셰어 (Katherine Shear) 박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애도는 상실 후, 사랑의 다른 형태일 뿐 (Grief is the form love takes when someone we love dies)"이라고.
어느 날부터인가, 할아버지는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지 않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액자를 본인의 현관문 근처 옆에 걸어놓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다시 세상에 걸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요.
(1) Kersting A, Brähler E, Glaesmer H, Wagner B. Prevalence of complicated grief in a representative population-based sample. J Affect Disord. 2011;131(1-3):339-43.
(2) Lundorff M, Holmgren H, Zachariae R, Farver-Vestergaard I, O'Connor M. Prevalence of prolonged grief disorder in adult bereavement: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 Affect Disord. 2017;212:138-149.
(3) Heeke C, Stammel N, Heinrich M, Knaevelsrud C. Conflict-related trauma and bereavement: Exploring differential symptom profiles of prolonged grief an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BMC Psychiatry. 2017;17:118.
(4) Zisook S, Shear MK, Reynolds CF, et al. Treatment of complicated grief in survivors of suicide loss: A HEAL report. J Clin Psychiatry. 2018 Mar/Apr;79(2):17m11592.
(5) Shear MK, Reynolds CF III, Simon NM, et al. Optimizing Treatment of Complicated Grief: A Randomized Clinical Trial. JAMA Psychiatry. 2016;73(7):685-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