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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Mar 05. 2021

가치에 기반한 의사 결정

우선 순위 확실히 하기

뉴욕대학교 정신과에는, 졸업식 날 동기들이 릴레이로 서로를 소개하는 전통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졸업식을 온라인으로 한 우리 동기들 또한, 이 전통을 잇기 위해 졸업식에 앞서, 동기 하나하나에 대해 익명으로 소개하는 내용들을 서로에게서 수집했다.  


친구들이 나를 묘사하는 내용은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내용이 있었는데, 우선순위가 명확하다는 것, 그리고 그걸 철저하게 지키며 사는 것이 보기 좋았고 그런 나의 성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친구들이 말한 우선순위는 '나의 가족'이었다.


삐딱하게 바라본다면, 졸업식에서 친구에게 할 말이 고작 ‘우선순위가 명확하다’라는 것은, 그만큼 일에 소홀하거나, 친구들에게 소홀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써준 일이나 친구 관계에 관련된 미사여구보다, 우선순위에 대해 언급한 친구들의 글에 기분이 진심으로 좋았다. 왜냐면, 나는 그렇게 살기 위해 무지하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갈림길에 선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우리는 우리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하기도 하고, 갈림길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멀리는 학부제에서 심리학이라는  (상대적) 비인기학과를 선택하는 것, (미국 시민권자로서) 군대에 가는 결심, (늦깎이로) 의학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한 것, (한국 대신) 미국에서 수련받기로 한 결정, (이산 가족 대신) 레지던트를 이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 수많은 선택 앞에서 누구나처럼 헤맨 적도 많았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의사 결정의 방법에는 많은 방법이 있다. 가령, 각 선택의 장단점을 나열해서 적어보고 비교해보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서, 내가 찾은 가장 좋은 선택 방법은 바로, '가치에 기반한 의사 결정'이다.


즉, 나의 우선순위인 가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앞서 말한 선택의 갈림길 들 앞에서, 미국에 건너오기로 결정하기로 한 시점부터 (혹은 사랑하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로) 우선순위는 하나였다. 바로 '가족'이었다. 좋아하는 정신과 진료도, 연구도, 모두 가족에 앞서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지난 7년간을 살아온 것 같다.


이십 대 후반에 입학했던 의과대학 4년, 공중 보건 석사 1년, 그리고 레지던트, 펠로우 수련을 합친 5년, 총 10년의 수련을 거의 마치고 처음으로 직장다운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였는데, 이 세 가지의 장단점이 너무도 다양하고 명확하여, 고민이 되기도 했다.


세 가지 선택지는, 간단히 요약하면, 1) 임상적으로 가장 재밌을 일, 2) 겉보기에 가장 좋아 보이는 일, 그리고 3) 우리 가족에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역시, 가족에게 가장 좋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메이요에서 뉴욕으로 이직할 때, 또 미국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한 가지를 꼽으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이 먼저'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처음에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브라이언 도지어가 33살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딸과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은퇴를 선언하며, 아내와 나눈 대화 일부를 소개했다.

브라이언 도지어는 수천만 불을 더 벌 수 있는 계약들 대신 33살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생긴 최악의 일이었음이 틀림없어. 왜냐하면 나는 집에만 하루 종일 있어야 했고, 딸아이를 매일 아침 깨워서 학교에 데려다줘 야만 했으니까... 난 그게 너무 좋았어. 그리고 그 행복감은 내가 야구에서 느낀 어떤 감정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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