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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Jul 18. 2016

첫 병동 근무

정신과 환자와 자살, 그리고 정신과 의사

저의 첫 근무지는 급성 정신병 환자들이 입원해있는 성인 병동입니다. 최근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유명해진 조현병 환자들이나 조울증 환자들, 약물 중독 환자들이 주로 입원해 있는 곳인데요. 꼭 조현병이나 조울증이 아니더라도, 다른 병동에서 감당하기 힘든 환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병동은 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을 시작한 첫 주, 저희 팀은 직전에 퇴원한 환자의 비보를 전해 들었습니다. 오랜 기간 조현병을 앓고 있던 한 환자가 퇴원한 지 일주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가족이 발견한 것입니다. 환자는 몇 년에 걸쳐 병원에 장기 입원과 퇴원을 수없이 반복할 만큼 증상이 심한 조현병 환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퇴원 시에는 자살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자살 생각이 들 경우, 반드시 병원에 오겠다고 굳게 약속했었다고 합니다. '이래서 환자 말에 안심을 하면 안 돼'라고 하시며, 교수님은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저희 레지던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정신과 의사가 자살로 환자를 잃는 것은 내과 의사가 암으로 환자를 잃는 것과 같아요.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막을 수 없는 자살도 있는 거예요.


아침 회의 시간에 소식을 전한 후 팀은 약속이나 한 듯 잠시 침묵에 잠겼습니다. 그 일순간의 침묵이 초짜 정신과 의사의 눈에는 망자에 대한 예의이자 묵념으로 느껴졌다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생각일까요. 마치 슬픈 영화를 볼 때에 느껴지는 저릿함처럼, 가슴 깊은 곳에 알 수 없는 슬픔이 전해졌습니다. 감정이란 것은 신기하게도, 공기를 타고 타인에게 전해지니까요.


정신과 의사로서 어디까지 공감을 하고, 얼마나 감상적이 되어야 하는가는 늘 풀기 힘든 과제입니다. 제가 멘토인 정신과 의사 선배들에게 늘 하는 질문이기도 하구요. 사실, 이번 환자는 제가 직접 본 적이 없는 환자였기 때문에 그 무게가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제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생기겠죠. 그때 제가 느낄 감정이 어떨지는 아직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다만,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선배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의 자살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짐작을 할 뿐입니다.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첫 번째 환자의 자살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와, 덤덤하게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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