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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Jul 10. 2016

이상을 현실화 하는 것에 대하여

메이요 클리닉에서의 새로운 시작

우리가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다.
- 찰스 메이요

 

지난주부터 제가 일하게 될 메이요 클리닉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정식으로 정신과 레지던트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름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배울거리와 처리해야할 업무들로 인해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여전히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의 레지던트 선발 과정은 한국과는 약간 달라서, 여러개 프로그램에 동시에 지원할 수 있고, 서류 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은 인터뷰 초청을 받게 됩니다. 인터뷰 여행을 통해 지원자는 레지던트 프로그램 (병원)에 대해서, 레지던트 프로그램은 지원자에 대해서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인터뷰 후 단순히 합격/불합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순위를 매깁니다. 레지던트는 가고 싶은 병원 순으로 순위를 매기고, 각 병원은 뽑고 싶은 레지던트를 순서대로 제출하는 것이죠. 그 후, 조금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한 사람 당 한 병원에 '매치'가 됩니다. 그래서 미국 레지던트를 지원하는 과정을 '매치'라고 부릅니다. 저희에겐 매우 생소한 과정이지요.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저는 현재 일하게 된 메이요 클리닉에 매치가 되었습니다. 춥기로 유명한 미네소타에서도 시골 마을인 로체스터에 있는 병원인데요. 메이요 클리닉은 '메이요 정신'으로 더 유명한 곳입니다. 오늘날 '환자 중심 의료'는 모든 병원이 표방하는 슬로건이 되었지만, 진정한 환자 중심 의료를 실천한다고 자부 할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메이요는 자신있게 환자의 편의만이 의료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가치'라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공의 의료진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약사 등등) 간의 협력을 강조합니다. 이 곳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병원에 기부하는 돈만 해도 일 년에 3000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메이요 클리닉 본관 앞에는 공동 설립자인 메이요 형제의 동상이 있습니다.

메이요 클리닉의 의사들은 가운을 입지 않고 정장을 입는데요. 이는 환자의 안전 문제 (흰 가운이 병원 내 감염의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사와 다른 의료진들 간의 구별을 두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는 병원의 설립자인 찰스 메이요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설립자의 정신이 150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는 걸 보면서 리더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정신이 미국 중부의 인구 십만명 남짓한 시골 마을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 정도)에 세계 최고의 병원이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미국에서 병원 랭킹을 발표하는 US News Hospital Ranking에서 메이요 클리닉은 2014-15년 1위를 차지했고, 15-16년에는 하버드 의과대학 수련 병원인 메사추세츠 종합 병원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올해 발표된 16-17년 랭킹에서는 다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환자의 이익만이 의료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환자들이 최첨단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의료진들간의 협동이 필수적이다." - 윌리엄 메이요



제가 이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동안 배우고 싶은 게 세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환자에게 충실한 정신과 의사로서의 지식과 자세이고 두번째는, 선한 의도를 가진 리더의 가치관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세번째는, 이상을 현실로 옮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 모든 것들을 일하면서 느끼고,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겨우 일주일 지났을 뿐이지만, 저는 이 곳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팀웍, 협동 정신, 친절함과 에너지에 놀라고, 또 많이 배우고 있음을 느낍니다.


병원이란 곳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매우 삭막하고 슬픈 공간입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희망을 되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죽음에 가까운 공포심과 두려움을 느끼며, 절망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저는 이상주의자입니다. 이상을 말하면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 이상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존재하는 곳에서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메이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나는데로 정신과 수련을 받으며 제가 느끼는 점들에 대해 이 곳에 기록을 남길 예정입니다. 이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제 개인적인 기록이자 일기이기도 하겠지만, 한 편으로는 제 글을 읽으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상주의자 분들을 위한 희망가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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