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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Nov 15. 2021

외로움이라는 전염병

외로움은 의학의 영역인가?

한 할아버지와 손자가 음식점 옆 테이블에 앉았다. 음식점에서 흔히 보는 조합은 아니어서 사이가 엄청 좋은 조부-손자인가 보다 생각했다. 웬걸,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둘은 한마디 대화 없이 스마트 폰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마친 후 자리를 뜰 때까지 두 사람은 한마디 의미 있는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국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하여 락다운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여러 사회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람들은 더 사회적으로 고립되었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전염병의 유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었다. (출처: usc.edu)

외로움이란 개인이 바라는 사회적 관계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해 발생하는 주관적인 고통을 말한다(1). 팬데믹으로 인해 더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외로움은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전 세계적인 사회 문제였다. 미국 내에서 2010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전국의 45세 이상 성인을 조사한 연구 결과, 두 시점 모두 약 35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2). 한국에서는 20대 열명 중 여섯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있으며, 고독사가 급격히 증가 중이다 (3). 급기야 영국은 외로움을 '사회적 감염병'으로 정의하고 2018년 1월, 외로움 장관(loneliness minister)을 선임하여 외로움을 감소시키기 위한 여러 국가적 정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사실 외로움을 '사회적 감염병'이라는 다분히 의학적 용어로 정의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외로움은 건강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외로움은 치매의 발생 가능성을 50퍼센트 이상 높이며 (4), 뇌졸중이나 관상동맥 질환을 포함한 심혈관계 질환을 30퍼센트 이상 (5-6), 조기 사망률을 26퍼센트가량 높인다고 한다 (5,7). 이러한 결과들은 대부분 외로움과 긴밀히 연관되는 우울증이나 다른 건강 관련 행동들을 통제한 것이다. 또한 외로움은 직접적으로 우울증, 불안, 자살의 위험성을 높이기도 한다 (2,8)

영국에서는 의사들이 외로운 환자들에게 '사회적 관계'를 처방한다 (출처: gponline.com)

의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지인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최근 ‘사회적 처방 (social prescribing)’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영국 국가 보건 서비스(NHS)의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환자들에게 ‘사회적 관계’를 처방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사회적 처방을 받은 환자들은 특별히 훈련된 자원봉사자들을 소개받고 그들에게서 정서적 지지를 얻는다. 이러한 사회적 처방 프로그램은 1,2차 의료진 방문과 응급실 방문 횟수를 감소시키며 각종 신체 및 정신 건강 지표를 향상한다고 한다 (9). 영국 국가 보건 서비스에서는 외로움을 감소시키기 위해 2024년까지 백만 명을 사회적 처방에 의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9).


어릴 때 형이랑 이러고 놀다 보면 꼭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 이젠 아무도 안부르네.


<오징어 게임>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기훈과 우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무렵까지 걱정없이 뛰놀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혜리와 친구들은 동네를 휘저으며 서로의 부모들과 마치 친부모 자식과 같이 격의 없이 지낸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그와 같은 커뮤니티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아무 걱정 없이 모여 놀다가 급작스레 친구네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그런 시대는 아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스마트 폰을 통해 친구들과 연결된다 (출처: TIME)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방에서 홀로 스마트 폰을 통해 친구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친구들의 행복해 보이는 삶을 보며 열등감,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신 기술적, 물질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지금 내 아이가 살아가는 사회가 내가 살았던 어린 시절보다 나은 환경인지는 의문이 든다.


사회적 처방을 바라보며 자문하게 되었다.


'의사가 사회적 관계를 처방하는 사회는 과연 괜찮은 사회인가?'


아니, 어쩌면 더 적절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의사가 사회적 관계를 처방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걸까?


참고 문헌

(1) Hawkley, L. C., & Cacioppo, J. T. (2010). Loneliness matters: A theoretical and empirical review of consequences and mechanism. Ann Behav Med, 40, 218-227.  

(2) Anderson, G. O., & Thayer, C. E. (2018). A national survey of adults 45 and older: Loneliness and social connections. Retrieved from https://www.aarp.org/content/dam/aarp/research/surveys_statistics/life-leisure/2018/loneliness-social-connections-2018.doi.10.26419-2Fres.00246.001.pdf

(3) 한겨레 신문. "외로움은 새 사회적 질병"...남 몰래 외로운 젊은이들. 2019년 12월 21일 자.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1664.html

(4) Kuiper, J. S., Zuidersma, M., Voshaar, R. C. O., Zuidema, S. U., van den Heuvel, E. R., Stolk, R. P., & Smidt, N. (2015). Social relationships and risk of dementi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longitudinal cohort studies. Ageing Res Rev, 22, 39-57.

(5) Donovan, N. J., & Blazer, D. (2020). Social isolation and loneliness in older adults: Review and commentary of a national academies report. Am J Geriatr Psychiatry, 28(12), 1233-1244.

(6) Valtorta, N. K., Kannan, M., Gilbody, S., Ronzi, S., & Hanratty, B. (2016). Loneliness and social isolation as risk factors for coronary heart disease and stroke: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longitudinal observational studies Heart, 102(13), 1009-1016.

(7) Holt-Lunstad, J., Smith, T. B., Baker, M., Harris, T., & Stephenson, D. (2015). Loneliness and social isolation as risk factors for mortality: A meta-analytic review. Perspect Psychol Sci, 10, 227-237.

(8) CDC Alzheimer’s Disease and Healthy Aging. (2020). Loneliness and social isolation linked to serious health conditions. Retrieved from https://www.cdc.gov/aging/publications/features/lonely-older-adults.html

(9) Roland, M., Everington, S., & Marshall, M. (2020). Social Prescribing — Transforming the Relationship between Physicians and Their Patients. New Eng J Med, 383, 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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