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자끄 라깡 세미나 XX Encore : 14

3


우리가 명사화하는 순간, 그것은 어떤 실체를 가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실체라는 것, 세상에, 요즘은 그것이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고하는 실체와 연장된 실체를 갖고 있습니다. (역자 주 :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따른 정신-육체의 이분법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 실체적 차원이 우리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든 간에, 지금까지 우리에게 단지 신호만 보냈던 이 실체적 차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실체적 차원, 즉 '말하는 차원(dit-mension)'이라고 써야 할 이 차원은 언어의 기능이 그 어떤 더 엄격한 사용 이전에 우선적으로 주시하는 것입니다.


우선 사고하는 실체를 크게 수정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가정한 '나는 생각한다'라는 명제 이후로 우리가 취해야 할 단계가 있는 게, 바로 무의식입니다. 나는 오늘날 언어처럼 구조화된 무의식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 공식은 존재하는 주체의 기능을 완전히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주체란 생각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주체는 우리가 끌어들이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매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바보 같은 말을 하도록 하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분석이란 이러한 어리석음과 더불어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주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추려는 만큼, 우리는 아마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며, 말들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들은 철회할 수 없다는 것이 게임의 규칙입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말은 항상 말해진 것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말해진 것에 결과로써 오는 것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구의 분석에서든, 아무리 어리석을지라도, 특정한 실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말하기의 상태 - 오늘은 이 모든 것을 제쳐둬야 합니다. 하지만 올해 가장 성가신 일 중 하나가 철학적 전통의 여러 말들을 이 시험에 부치는 것이라고 미리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파르메니데스는 실제로 시를 썼습니다. 그는 - 언어학자의 증언이 여기에서 우선시 되는데 - 언어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이 장치들은 수학적 구문의 전개, 연속 후 교대, 교대 후 구속과 매우 유사합니다. 파르메니데스가 시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전할 것을 가장 덜 어리석은 방식으로 말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존재는 있고, 비존재는 없다'는 말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올해 우리는 그래도 일자(Un)의 존재와 그것을 나타내는 기호(signifiant)가 필요할 것입니다. 지난해에 제가 여러분께 길을 열어드렸던 '일자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것이 아무리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여기에서 진지함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철학적 전통에서 몇 가지 참고 자료를 가져오게 될 겁니다.

이전 13화 자끄 라깡 세미나 XX Encore : 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