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결혼은 과연 미친 짓일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심기가 불편한 이들이 있다.
대개는 올해 수능을 망쳐버린 수험생, 혹은 사업이 잘 안 되어 괜히 주눅 드는 사람, 얼마 전 다투어서 가족 형제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일 테다.
많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관심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잔인한 지적질에 마음이 상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한 집단 중의 하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결혼 적령기 혹은 그 시기를 놓친 이들일 것이다.
그러한 이들에게 조금의 위안이 될 만한 소식이 있다.
2016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520만 3000여 가구로 지속해서 증가해 전체의 27.2%를 차지한다고 하며, 혼인율도 점차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918290,SBS 뉴스 참조)
자의든 타의든 비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물가와 이에 따른 필수적인 생활비는 끝도 없이 증가하고 있어 한 가정을 일구고, 이끌고 가기에는 경제적으로 꽤나 팍팍한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든 이들에게 있어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그러한 무거운 짐을 굳이 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요사이 유행하는 혼술, 혼밥의 문화나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의 흥행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제는 더이상 ‘‘싱글’의 삶이 타인의 눈치를 볼 정도로 불편하지 않다.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이미 자의적 비혼이 일반적이며, 동양권보다 개인화와 사생활, 자기 영역에 대한 개념이 먼저 자리 잡힌 유럽 등의 서구 사회에서는 비혼이 디폴트 모드(default mode, 기본 상태)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결혼 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합리적으로 이혼을 그 대안으로 쉽게 고려하기도 한다.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부부의 연 아래 태어날 사랑스러운 아기,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행복한 어울림을 떠올려 본다면 결혼이라는 과정은 삶을 완성해나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방점으로 생각된다.
하버드 대학의 조지 베일런트가 일생을 바쳐 연구했던 행복의 조건 중 ‘안정적인 결혼 생활’도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지 않던가.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면, 분명 인간의 ‘평범한 삶’은 결혼을 빼놓고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반대 측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라는 유명한 격언부터, 오스카 와일드, 톨스토이를 위시한 대작가들의 결혼에 대한 비판과 조소, 그리고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성경의 의미심장한 메시지까지, 결혼에 대한 회의를 가중시킬 말들은 얼마든지 있다.
과연, 결혼은 행복의 장일까, 아니면 무덤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끔찍한 일일까?
결혼할 준비, 되었나요?
‘결혼을 언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자연스레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답이 뒤따른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준비라면, 흔히들 부부가 살 집과 그 안을 채울 살림살이들, 자동차,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안정적인 부부의 수입 등과 같은 물질적인 것들을 떠올리기 쉽다.
물론, 부부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이러한 요소들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준비는 결혼이라는 빅 이벤트를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일 것이다.
나는 과연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왜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나?
결혼을 결심하는 이들은, 대개 ‘혼자 있기 싫어서’, 혹은 ‘외로워서’와 같은 낭만파이거나, ‘이제는 결혼해야 할 것 같아서’, ‘나이가 차서’와 같은 현실 순응파 양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던 삶에서, 이제서야 나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면, 우선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기쁨과 사랑에 가득 찬 마음으로 결혼을 준비하기에 앞서, 결혼을 결심하도록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동인(motivation)의 이면을 깊게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사랑과 애정에 대한 결핍감이 결혼을 조장하지는 않았을까?
심한 공복감에 급하게 먹는 맛있는 음식은 그저 주린 배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음식 그 자체에서 누려야 할 온기와 맛은 뒷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삼켜진 음식은 체하기 마련이다.
굶주려 있던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깃드는 순간을 음미하며 즐기지 못하고, 급하게 내 것으로 ‘삼켜 버리려’ 결혼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결혼생활의 현실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미숙한 내사(introjection, 외부의 대상을 선별치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동화시키려는 방어기제)는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
혹은, 상대방에게 거는 기대가 과도하지는 않은가?
연인이 특정 기준을 겨우 만족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결혼 직전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콩깍지가 씐 상태’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상대방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 보이며, 유능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모든 결핍을 채워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의식의 수면 위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 부분이 바로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도파민, 옥시토신과 같은 사랑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들은 채 몇 년을 가지 못한다.
상대를 비추던 후광이 사라지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의 삶들은, 상대에 대한 허상의 기대와 의존심만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다.
내가 가진 결핍감의 깊이와, 그로 인해 상대방에게 거는 결혼 생활에서의 기대를 스스로 잘 가늠해 보는 일은, 결혼을 앞두고 해야 할 굉장히 중요한 준비 과정일 것이다.
결혼은 당연히 선택의 문제이다
법륜 스님은 <스님의 주례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결혼은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지 않을 때 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결혼이 서로를 속박하지 않게 됩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이기지 못해서, 내가 가진 뿌리 깊은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결혼은 속박과 구속을 낳는다.
상대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깊은 실망만을 남긴다.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결혼이, 실은 더 큰 아픔을 만드는 것이다.
결혼 적령기이기 때문에 등 떠밀려 하는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당연히,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그 선택의 과정은 건강해야만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내가 결혼에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만든 것은 과연 어떤 부분인지를 깊게 헤아리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혼자 살아도 괜찮고, 같이 살아도 괜찮은 자기애가 충만한 시기가, 역설적으로 가장 결혼에 적합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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