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임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대 여성 A는 항상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많은 시간을 남자 친구와 보내고 많은 것을 의존한다. 남자 친구가 세상에 둘도 없는 운명의 남자인 것처럼 대하다가도 작은 오해로도 크게 다투고 헤어지곤 했다. 그리고는 이내 비슷한 성향의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나서 빠져들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다가 자해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A는 친구가 많으나 관계는 항상 불안정했다. 처음에는 다정하다가도 작은 오해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는 일이 반복되어 대인관계는 단절되었다.
A는 충동적인 쇼핑으로 인하여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간혹 많은 술을 마시고 실수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면담을 하다 보니 어린 시절 양육자가 자주 바뀌었고 성적인 학대 경험을 이야기했다.
전형적인 경계선 성격장애(경계성 인격장애, bordeline personality disorder)의 사례입니다.
영화 '아비정전' 속의 고 장국영이 분한 '아비'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유기당한 경험 때문에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마음 깊숙한 곳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떠날까 봐 자신이 먼저 이별을 선택하곤 합니다.
‘아비’는 마음 한 구석의 텅 빈 공허함을 채우기 위하여 위험한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앞선 사례나 영화 아비정전에서처럼 경계성 인격장애는 책이나 영화에서 흔하게 다뤄지고 때로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불안전한 자아상,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 충동적인 행동으로 대표되는 특징을 가진 경계성 인격장애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단 및 특징
정신의학진단분류(DSM-5)에 따르면 경계성 인격장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대인관계에서의 불안정성 / 자기 이미지의 왜곡 / 감정의 극단적인 변화 및 충동성이 성격 전반에서 드러나고, 다음 9개 중에서 5개 이상에 해당해야 합니다.
- 실제 또는 상상에서 버림받을 것 같은 경험과 버림받지 않기 위한 노력.
- 대인관계에서의 불안정성 / 극단적인 이상화부터 혐오 감정까지 극단을 오감.
-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불안정성, 정체성의 혼란을 자주 느낌.
- 충동성이 자주 드러남 (성관계, 금전문제, 물질남용, 식이장애 등이 흔함)
- 자살시도, 자살 표현, 자살 위협 등이 있음.
- 감정이 불안정하여, 외부환경에 반응하여 극단적으로 변함.
- 만성적인 무력감을 경험
- 화, 분노 조절을 못하고 쉽게 감정을 표현함.
- 일시적이거나 스트레스와 관련된 관계망상 또는 해리 증상을 경험.
성격장애를 진단하기 전에 성격적인 경향과의 감별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특정한 성격적인 경향을 가지지만 그것이 성격장애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격경향이 반복적이고 심각한 일상활동 / 사회활동 / 직업활동에 문제를 야기할 때 성격장애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 / 자아(self)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는 적절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이 안정이 안 되는 것을 남에게 찾으려고 합니다.
대인관계(또는 이성관계)를 할 때 초기에는 상대방이 이상적인 사람인 것처럼 좋아합니다. 하지만 작은 문제에도 쉽게 실망을 하고 혐오하는 단계까지 진행을 하여 나쁜 관계로 진행을 합니다.
자신 스스로 안정이 되지 않으니 감정 변화가 심합니다. 특히 주위 환경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사소한 문제에도 극적인 변화를 보이곤 합니다.
이런 감정 변화의 이면에는 만성적인 공허함이 존재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하여 극단의 감정을 오갑니다.
때로는 위험한 행동을 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면서 마음을 채우려고 합니다. 많은 금전 사용, 성적인 문제, 식이 문제 등을 일으키고 때로는 충동적인 자살/자해 행동을 합니다.
원인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의 75%가량에서 신체적 / 성적 학대가 보고됩니다. 어린 시절 유기, 분리, 학대 경험이 경계성 인격장애를 형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애 초창기 경험이 성장과정에서 좋은 관계 형성을 통하여 극복되어야 하는데, 만약 극복이 되지 않을 경우에 경계성 인격장애가 형성됩니다.
신경생리학적으로 어린 시절의 불안 경험은 편도체(amygdala)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반복되는 부정 경험은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장기간 지속되면 전두엽(frontal lobe)의 판단능력, 충동조절능력에 저하를 가져옵니다.
편도체 – 전두엽의 조절기능의 이상은 반복되는 충동성과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설명합니다. 유전적으로 정서조절능력과 충동성의 부족이 환자와 가족들에서 동시에 보고되는데, 환자의 가족들 중에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가 유의하게 많이 보고됩니다.
역학 & 예후
사회활동을 하다 보면 실제로 이런 비슷한 경향을 자주 보게 되는데, 성격장애 수준으로 심한 경우는 전체 인구의 2%가량에 해당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환자 중에는 20%가량을 차지합니다.
우울증, 물질관련장애, 식사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다른 성격장애(분열형성격장애 등) 등의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이 병발이 높습니다. 자살시도의 비율이 일반 인구에 비하여 100배 이상 높으며, 30세 이전에 5-10%가량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연령이 증가하면서 충동성, 감정의 변동이 호전이 되고 성격경향이 약화됩니다. 실제로 임상적으로 중년기 이후에 성격장애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치료
성격장애는 치료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격적인 문제도 분명히 치료가 됩니다.
특히 결혼, 직장생활, 대인관계 등의 사회적인 기능이 유지되는, 심하지 않은 성격장애의 경우 예후가 좋습니다.
심리치료(정신치료)가 근본적인 치료입니다. 더불어 우울, 불안, 충동조절문제 등의 문제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 약물치료를 병행할 경우 더 좋은 결과를 보입니다. 임상적으로 심층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가장 좋습니다.
치료 초기에 퇴행을 보이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극복하고 나면 대개 호전 추세를 보입니다.
성격은 긴 시간 동안 형성되고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치료 역시 대부분 장기간이 소요됩니다. 치료과정에서 일부 증상들은 분명한 호전을 보이고 사회에 좀 더 적응적이 됩니다.
지금까지 경계성 인격장애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불안정한 자기상, 이상화/혐오를 오가는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가 특징입니다.
충동적인 행동, 자살시도, 자살위협 등이 문제가 되고 주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치료 호전을 볼 수 있는 질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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