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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Oct 23. 2017

우울증 치료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정신의학신문 :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나 우울한 것 같아.”

지인에게 이런 말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울이라는 감정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감정이기 마련이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오늘따라 뭔가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면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회사에서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상사의 꾸중을 듣고 난 후에도 ‘우울한’ 기분에 빠진다. 자존심을 다치게 만드는 연인과의 다툼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다

‘일상적인’ 우울감은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과는 구분돼야 한다. 우울증은 지속적인 우울한 감정뿐만 아니라, 평상시에 즐거웠던 활동들에 대한 흥미를 사라지게 하고, 만성적인 피로감과 에너지 저하, 무기력감을 유발하며, 식사 및 수면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체 활동들조차 망가뜨린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 같고, 자신이 목숨을 끊어야만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끔찍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하여,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기도 한다.

우울감이 일상의 작은 감정의 물결에 해당한다면, 우울증은 해안의 방파제를 매섭게 때리는 파도와 같다. 그리고, 만성적으로 진행된 우울증은, 평화로운 마음의 해안을 한 번에 집어삼킬 수 있는 쓰나미일 것이다.

세계 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에서는 우울증을 인류에게 가장 큰 부담을 초래하는 질환 중 3위로 꼽았고, 2030년이 되면 우울증이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흔하면서도 무서운, 그러면서 ‘눈에 보이지는 않는’ 질환이 인간의 삶을,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를 갉아먹으리라 전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우울증의 사회적 비용은 2012년 기준 연간 8조 3천억 원 정도이며, 더욱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우울증이 개인의 고통을 넘어 사회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우울증 평생 유병률은 약 5%에 달하지만, 서구와 비교하였을 때 문화의 특성상 우울감을 보고하는 역치가 높아, 실제 우울 증상이나 우울증을 겪는 인구의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는 무지함과,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격식을 차리는 문화적 특성 탓에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우울증을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만성화가 된 다음에야 뒤늦게 치료를 시작하는 안타까운 경우 또한 많이 겪게 된다. 물론 이런 사회적인 요소 뿐 아니라, 개인이 평소에 가진 우울증에 대한 생각이나, 지식, 선입견 등이 치료 가능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우울증 치료를 망설이게 하는 생각들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하는 이들은, 마치 안개가 자욱한 도로의 한 중간에 서 있는 자동차와 같다. 이 안개의 끝이 보이지 않아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어떻게는 길을 찾아 보려 우왕좌왕하다가, 길 중간에 멈추어 서곤 안개를 뚫고 나가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우울증 치료를 망설이는 이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생각의 유형들이 발견되곤 한다.


1.내가 우울증이 아니기를 바란다.

: 자신의 삶이 우울증의 늪에 조금씩 빠져들어 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나는 아니겠지. 이러다 말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 기간 머무르며 비바람을 일으키는 장마를 보고도 그저 스쳐 가는 소나기일 것이라고, 나는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마치 나를 노리는 짐승들이 알아서 지나가기를,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 기다리는 타조의 모습과 같다.

: ‘일상적인 우울감’ 의 수준이라면, 시간이 지남 따라 기분의 물결은 잠잠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음을 휘감아버리는 깊고 높은 우울증의 파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기보다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거세게, 격렬하게 몰아친다. ‘골든 타임’을 놓쳐버린 우울증은 만성적인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유발하며, 일상생활과 대인관계, 사회생활 등 삶의 전반적인 영역을 무너뜨릴 정도로 파괴적이다.


2.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 우울증 치료를 결심하더라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어디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지에 대해 막막한 느낌부터 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은 유형 중의 하나이다. 결국, 출처를 알 수 없는 민간요법이나, 타인의 극복 수기만을 귀담아듣고 헛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후회하기도 한다.

: 심리적인 문제의 해결을 표방하는 치료의 종류는 세상에 알려진 것만 수 백 가지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치료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초기의 우울증이라면, 인지행동치료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대인관계치료 (inter personal therapy) 등의 근거가 입증된 심리치료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혹은, 불면이나 초조함과 같은 증상들에 있어 소량의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도가 심한 우울증이라면, 항우울제를 이용한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여러 효과 있는 심리치료를 병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우울증의 상태가 어느 수준인지, 어떠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 절대로 혼자서,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숙련된 치료자와 함께 상의하여 치료 방향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3.보험 문제, 사회적 낙인이 걱정된다.

: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치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 혹은 보험 가입 등의 실제적 문제들에 대한 염려로 치료를 미루게 되는 경우이다. 대개는 ‘취업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대학교 입학 시의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염려하거나, 혹은 ‘보험 가입을 시켜주지 않는다더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을 굳게 믿고 고통을 감내하려고 한다.

: 우선, 기업이나, 학교에서 자신의 건강보험 이력을 동의 없이 조회한다는 ‘도시 괴담’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기관에 따라 동의의 과정을 거친 후 조회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이력으로 인한 사보험 가입 제한의 경우에도, TFT를 만들어 소위 ‘F코드’에 대한 차별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니 기대해볼 만하다. 최근에는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를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과 질환에도 적용하는 등 조금씩 개선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만약 건강보험의 이력이 남는 것이 두렵다면, ‘일반진료’를 받는 방법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외부적인 요인들보다도 현재, 나의 삶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치료의 득과 실을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보도록 하자.



우울증 치료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당신은 지금 안개가 자욱한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혹감에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길 한가운데 멈추어 서서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기만을, 아니면 이 안개가 마법처럼 걷히기만을 기다릴 수도 있다. 물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안개는 쉬 걷히지 않을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점점 뿌옇게 짙어지며 내 시야를 가린다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용기를 내어 설령 기어가듯이 느린 속도라도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안개의 가장자리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보이는 역설적인 현상은, 대개 자신의 우울증이 ‘심한 수준’ 임을 누구보다도 뒤늦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가족들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이 염려의 말을 건네도, ‘나는 아닐 거야’라는 생각으로 부정을 가장한 회피를 선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분명,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리기가 절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자신이 우울증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하다면 그때가 바로 치료를 받을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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