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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의학신문 Feb 26. 2018

미투(Me too) 운동과 트라우마의 치유

[정신의학신문 :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음지에서 양지로 : 미투(Me too) 운동의 물결


요즘 언론을 연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가 있다. 바로,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 씨를 비롯한 예술계 인사들의 성 추문 파문이다. 이윤택 씨는 누구나 인정하는 예술계의 거두이며, 동시에 연극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최근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연극계에서의 그의 위상을 이용해 수많은 성추행과 성폭력을 행해왔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그가 운영해 온 같은 극단의 여성들이었으며, 안타깝게도 그녀들은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연극계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이 두려워 이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불과 얼마 전에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성역이었던 검찰 내에서의 성추행 경험을 한 현직 여검사가 용기 내어 밝혔고, 검찰 내부에서 암암리에 행해져 온 어두운 부분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도 직장이나 사회에서 강자의 위치를 이용한 성폭력이 밝혀진 사례가 적지 않지만, 과거와 확연히 다른 점은 피해자가 직접 SNS 나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이름과 가해자의 이름을 사람들 앞에 용기 내 밝혔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형 미투 운동의 물결이다.
 
미투(Me Too) 운동은 2017년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이 저지른 성 추문의 폭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비 와인스틴은 수십 년 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주로 자신의 요구를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여배우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추악한 성욕을 채워 왔다. 그리고, 마침내 여배우 애슐리 저드(Ashley Judd)의 공개적 폭로를 시작으로, 유명 여배우들이 과거 그에게 당한 성추행 경험을 직접 자신의 SNS에 용기를 내어 게시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하비 와인스틴 뿐만 아니라 여러 유력 인사들의 과거의 그릇된 행동들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밝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성별과 국가의 구분 없이 범세계적인 캠페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강자가 휘두르는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힘없는 약자라는 이유로 마음의 그늘에 숨겨만 왔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가 비로소 조금씩 양지에 드러나는 순간일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말하지 못했던, 그럴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Trauma)

 

정신의학에서 이야기하는 트라우마(trauma)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끔찍한 사건의 경험과 함께 남겨진 심리적, 신체적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신체적 기억이라 표현한 것은, 기억에 통합되지 않은 트라우마의 잔재가 이따금 의식의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되면, 실제적인 신체적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비롯한 두렵고도 강렬한 경험은 우리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위협을 감지하여 본능적으로 작동하며 우리의 신체기관들을 조절하던 교감신경의 스위치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마치 난방기의 온도를 조절하는 조절계가 고장이라도 난 듯이, 늘 긴장되고 각성한 상태가 유지된다(hyperarousal, 과잉 각성). 잦은 불안과 불면이 삶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건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단서(cue)를 접하게 되면, 마치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듯이 재경험(re-experience)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의 몸과 마음은 다시금 강렬한 고통에 휩싸이게 되기도 한다. 또한,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상대방과 관련된 모든 사람, 상황, 장소들을 회피하게 된다(avoidance, 회피). 어떤 이들은 트라우마의 경험 이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감정 자체가 싸늘히 식어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고통이 남긴 흔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 중 일부는 다행히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트라우마는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 될 수도 있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온전하게 회복되어 삶을 평탄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이들도,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 한동안 고통을 겪기도 한다. 하비 와인스틴을 20여 년 전의 일로 고발한 애슐리 저드의 경우 또한, 오랜 기간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을 터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말 그대로 ‘얼어붙는다’. 특히, 심각한 충격의 순간, 뇌의 언어중추인 브로카 영역(Broca’s area)과 주변부의 혈류가 감소하면서 그 기능은 극도로 저하된다. 트라우마 이후에 실어증을 겪거나, 한동안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등의 증상은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직장에서의 성폭력에 노출된 이들은 대개 사회 초년생이거나, 가해자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이다. 주변의 눈초리, 자신의 분야에서 잡음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불안감, 사건을 폭로할 때 벌어질 일들에 대한 두려움 등은 자신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더욱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만든다. 서두에 언급한 사건의 피해자들 모두, 성폭력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을 밝혔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위로가 아닌 피해자 스스로가 참고 덮어야 한다는 메시지뿐이었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는 언어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 즉 트라우마의 경험에 대해 감정을 담아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에 효과적인 치료들(EMDR, Prolonged Exposure, CBT)은 외상의 기억들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돕고, 이를 재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주변의 상황과 시선들이 말을 꺼내기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라면,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은 요원하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이차적 질환들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위상을 악용해, 폭력에 대해 즉각 반발하거나 쉬 밝힐 수 없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가하는 성폭력은 마음 깊이 뿌리내릴 수밖에 없는 ‘최악의’ 트라우마'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성폭력을 경험하고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하는 이들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이다.
 

사진_픽사베이
미투 운동을 통한, 사회가 함께 하는 트라우마의 치유

성폭력의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 동성애자, 신입 직원 혹은 어린아이와 같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이다. 지금껏 성폭력과 같은 사건들을 우리 사회에서는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했고, 오히려 당한 이들에게 일부의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조신하지 못해서’ 혹은 ‘하필이면 그 시간에 네가 거기 있어서’와 같은 무책임한 말이 피해자들에게 던져졌고, 이들은 또 다른 종류의 트라우마를 입어야 했다. 강자에 의한 약자의 부당한 피해와, 이 것이 일부 당연하다 여겨지는 것이 비단 대한민국에서만의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에 대한 참여 열기는 과거라면 상상하지도 못할 움직임이다. 미투 운동은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비롯한 여권의 신장, 반 인종주의에 대한 인류적 공감대처럼 사회의 흐름이 바뀌어 가는 과정이며, 인류가 진화하고 사회가 커지며 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억눌려 있던 약자들의 용기 있는 반란이다. 그리고 이는 건강한 자기주장(self-assertiveness)이며, 내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집단 무의식의 건강한 발현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을 통해 오랫동안 눌려 있던 스프링이 위로 튀어 오르듯 연일 과거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과오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데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억눌려 있던 약자들의 분노는 언젠가는 적절한 높이로 돌아갈 것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수위를 잘 조절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의 용기에 그저 환호하기보다는, 미투 운동과 같은 캠페인이 없이도 약자가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해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이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트라우마의 고통을 극복하는 데 있어 자신의 숨겨왔던 감정과 생각, 내면을 드러내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그 바탕이 되어야 할 더욱 중요한 전제는, 부당하고 옳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함의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고통을 겪었던 이들이 용기를 내어 부당함을 밝히는 일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격려와 공감, 그리고 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투 운동에 참여하여 용기를 나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미투 운동은 약자가 당했던 폭력의 트라우마를 우리 사회 구성원이 함께 위로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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