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렇게 그는 한 순간에 마을의 사냥감이 되었다.
– 더 헌트(The Hunt, 2012)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얇은 막 하나이다.”
-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심리학자, 1944 ~ )
한 남자가 있다. 이웃 주민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다정했던 그는 직장에서는 아이들의 화장실 뒤처리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인 유치원 교사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가 돌보던 한 소녀가 누군가에게 우연히 그의 성기를 보았다고 말하였다. 발기된 남자 성기의 모양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그 소녀의 말을 믿은 누군가에 의해 소문은 온 마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을 전체로부터 고립된 그에게 군중들은 무자비한 응징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그는 한순간에 친절한 이웃에서 마을의 사냥감으로 전락하였다.
영화 ‘더 헌트’는 덴마크의 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소아성애자의 누명을 쓴 유치원 교사가 겪는 비극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가해지는 한 인간에 대한 공동체의 집요하고 음습한 폭력에 대해 고발한다. 주인공 ‘루카스’는 영화 러닝타임 내내 마치 사냥을 당하는 사냥감처럼 구석으로 몰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폭력에 시달리며 끝내는 조용히 무너져 내린다.
시작은 한 소녀가 그에게 느낀 순간적인 서운함에서 비롯된 가벼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 거짓말은 아주 단순한 몇 가지의 정황 묘사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편견 섞인 대전제를 통해 의심할 여지없는 확고한 진실로 거듭난다. 일단 진실로 포장된 거짓은, 또는 몇 가지 진실이 뒤섞인 거짓은 또 다른 진실 같은 거짓을 낳는다. 그가 돌보던 다른 원생들도 성추행의 후유증을 나타내며 지하실에서 루카스에게 성추행을 당했음을 진술한다. 그의 집에는 지하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끝내는 소문의 당사자인 소녀조차도 루카스의 성추행이 실제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인간의 기억의 보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는 우리의 기억이 반드시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 그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녀는 더 나아가 심리실험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를 통해 누군가의 암시를 통해서 거짓 기억이 유도될 수도 있음을 증명하였다. 물론 그녀가 기억의 억압이나 무의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때로 떠오른 기억이 진실 자체가 아니라 환상과 두려움, 암시와 뉴스들이 뒤섞인 전혀 새로운 기억일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하나는 이야기 진실, 또 하나는 실제 벌어진 진실이지요. 우리는 실제 벌어진 진실의 앙상한 뼈대 위에 살과 근육을 덧붙여 우리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관념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 진실이 사라지고 이야기 진실이 시작되는 곳에서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로렌 슬레이터 저>
사소한 거짓말이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절대적 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던 감독은 영화 중반부터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던 진실에 오류가 있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묘사한다. 루카스가 경찰 수사 결과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소아성애자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친밀하고 책임감 있던 평소의 모습은 사이코패스의 가증스러운 이중성이 되었고, 유치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베풀었던 그의 노력과 봉사는 그가 소아성애자라는 흔들릴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사람은 한 번 신념이 형성되면, 훗날 이에 반하는 객관적 증거를 마주치더라도 이를 무시하게 되거나, 또는 그 증거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인다. 즉, 확증편향이다.
루카스의 죄없음이 밝혀진 후에도 사람들은 집단이라는 익명성 뒤에 숨어 폭력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 숨어 그의 집에 돌을 던지고, 그가 평생 함께한 늙은 애완견을 무참히 살해한다. 두들겨 맞아 퉁퉁 부은 얼굴로 성탄절 예배에 참석한 루카스는 눈앞에서 성가를 부르는 소녀의 순수함과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군중들의 정의감이 뭉쳐 자아낸 무자비한 폭력의 한가운데에 서서 끝끝내 절규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거짓 기억과, 소문이 만들어낸 편견 대신 자신의 눈으로 직접 자신을 봐달라고 말이다.(영화 초반에 사냥감을 자주 놓치는 친구 테오에게 주인공 루카스가 안경을 권하는 장면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라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오늘날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수많은 인권단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여성운동단체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수행원을 둔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기꾼이자 냉혈한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누군가의 왜곡된 과거의 기억에 의해 미래를 빼앗기는 또 다른 누군가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그것도 자신 있게 했기 때문에, 그들이 사소한 부분까지 말하기 때문에, 또 그런 말을 하면서 감정까지 표현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적인 확증입니다. 자유와 마찬가지로 기억은 연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심리학자, 1944 ~ )
영화의 마지막, 소녀의 고백으로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한 때 루카스를 무자비하게 몰아갔던 마을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절친한 친구와 친절한 이웃이 된 루카스를 환영한다. 그러나 그는 예전과 달라져 버렸다. 그의 정신은 마을 사람들의 눈빛에서 친밀함 대신 두려움을 더 느끼고, 그의 몸은 아이들과 닿는 것만으로도 한참 동안이나 움츠러들고 고민하게 되었다. 마지막 순간 그에게 날아온 한 발의 총알은 여전히 루카스의 결백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가 쏜 것일까, 아니면 언제든 다시 사냥감이 될 수 있음을 직감한 그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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