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최근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가 극장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영화 흥행의 기준인 1000만 관객에 조만간 도달할 것 같습니다. 어벤저스는 우주를 배경으로 아이언 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 신과 영웅들이 펼쳐나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신화, 영웅담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단군 주몽 신화, 슈퍼맨 시리즈가 그 좋은 예일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어벤저스 시리즈는 많은 요소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슈퍼 히어로들이 어벤저스의 맨션에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은 올림포스 신전에 모인 신들은 연상시킵니다. 등장인물 중, 엄청난 재력으로 첨단 무기를 제조하는 아이언 맨은 미다스를, 화가 나면 녹색 괴물로 변신하는 헐크는 헤라클레스를, 캡틴 아메리카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 매칭됩니다. 이렇듯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예술, 철학, 의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혹시 정신의학에서 많은 용어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롯된 것은 알고 계셨나요?
1. 프시케, 정신의학의 “정신”이라는 뜻
정신의학(psychiatry)의 정신은 그리스 신화의 프시케(Psyche)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 자매 중 막내인 프시케는 이 세상의 언어로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질투가 난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에로스는 어머니의 명령으로 프시케에게 저주를 내리러 갑니다. 그런데 에로스는 프시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나친 호기심으로 에로스와의 사랑이 파국을 맞고 죽음과 같은 잠에 빠졌습니다. 에로스는 프시케가 가여워 제우스에게 빌어 잠에 깨어나게 도움을 주었고 프시케는 이후 불멸의 여신이 되었습니다. 프시케는 육체와 대립하는 신적 존재로서의 영혼으로 생각되었고 이는 psychiatry(정신의학), psychology(심리학) 등 서구 단어에 반영되었습니다.
2.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Oedipus complex)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단어는 정신의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시다면 많이 들어 익숙하실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핵심 이론으로 남근기(2세~6세) 무렵 반대 성을 지닌 부모와 성적으로 결합하려고 애쓰며, 동성의 부모가 죽거나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이 시기는 정신발달학적으로 초자아가 형성되고 공고화되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오이디푸스라는 용어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에 비롯되었습니다. 테베의 왕, 라이우스는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의 경고를 받자 아이를 산에다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우연이 양치기가 아이를 발견하여 폴리부스 왕에게 갖다 주었고 왕은 아이를 길렀습니다. 오이디푸스가 청년이 되었을 때, 길을 걷다 갈림길에서 행인과 누가 길을 먼저 갈 것인지를 놓고 다투다가 사람을 죽입니다. 스핑크스의 저주를 푼 오이디푸스는 공석이었던 왕좌에 오르게 되고 기존의 왕비와 결혼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스스로 눈을 찔러 시력을 잃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발달 일정한 시기, 근친상간에 대한 욕구에 대해 오이디푸스 비극에서 내용을 차용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명명하였습니다.
3.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남자, 나르키소스(Narcissus)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었고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고 구애를 받았으나 이를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사랑을 거절당한 이들 중 누군가 나르키소스 또한 자신들처럼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복수의 여신에게 빌었습니다.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샘에 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르키소스는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결국 탈진하여 죽었습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남자,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유래했습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남자, 그 남자는 사랑에 최종적으로 성공했을까요?
4. 목양의 신 판(Pan), 사람들을 놀라게 하다.
헤르메스가 공주와 사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염소의 하체, 인간의 상체의 기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공주는 흉측한 아이를 버렸으나 헤르메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신들 중 누군가 인간과 동물 양쪽 모습을 모두 가진 아이를 보고 “모든”이라는 뜻의 판(Pan)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판은 낯선 외모로 신들의 세계에 있지 못하고 인간계로 내려와 숲에 거처를 정하고 목양의 신이 됩니다.
외모만큼이나 엉뚱한 성격을 가진 판은 숲 속이나 동굴에서 사람들에게 갑자기 소리를 질러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극단적인 불안 증상을 특징으로 하는 공황 장애(Panic disorder) 명칭은 악동의 신, 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금 어렵게 느껴졌을 정신의학, 신화에서 정신의학 용어를 찾아보니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았나요? 정신적 어려움과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건강하신 분들도 영화, 신화, 미술작품 등으로 정신의학이 친근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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