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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Nov 17. 2019

안전하고 따뜻한 경험에 함께하기

집단상담 엿보기: 만성 우울증, 5회기

Photo by Dimitri Houtteman on Unsplash 


집단상담의 매력

 집단상담의 매력이란 집단원들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치료자는 연결해주는 역할로 잠시 물러서있다는 점이다. 개인상담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한다, 혹은 뭔가 의미있는 개입을 즉각적으로 해야한다는 압력이 큰 것에 비해, 집단상담은 상호작용이 흘러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작업을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집단상담을 하면서 그런 과정에 빠져들 '살아있었다'.


집단상담의 과정

  1회기에는 집단원들의 저항이 심하게 일어났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시간은 없고 설명이 너무 많다는 내용이었는데, 사실 저항이란 생기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을 참지 않고 털어놓는 것 자체가 건강하게 느껴졌다. 우울감이 깊어지는 경우 중에 하나는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거나 참는 태도가 반복되기 때문인데 첫 회기라는 낯선 환경에서 그것들을 담아두다가 drop되지 않았단 점에서 오히려 희망과 기대감이 커졌다. 어쨌든 집단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우리의 작업에서 설명은 줄이고 작업과 활동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어려움을 토로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구조화했다. 그런 해소를 위한 것이라면 자조집단의 형태에 참여하면 되고 우리가 모인 이유와는 다르다는 점을 전달했다.

  2회기부터는 명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심 걱정과 기대가 섞여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새로운 것을 느끼지 못했다, 다 아는 것들을 느꼈다는 반응들이 많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누군가는 키세스 무늬가 예쁘다는 시각을, 진한 초콜릿향을, 입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함, 초콜릿이 녹고 남은 쿠키의 질감 처럼 각자 새로운 감각들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바쁘게 생활하고, 또 우울한 기분 화난 감정들 때문에 지나치고 있는 경험들이 매우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아차렸을 지 궁금했다. 점차 집단원들 간에 공감 반응이나 피드백이 생기면서 집단에서 서로 끈끈해지는 응집력이 자라나는 회기였다.

  3회기에서는 호흡 명상으로 시작한다. 호흡에 집중하며 배가 오르내리는 감각이 지시와는 달랐다는 피드백이 기억이 남는데, 심호흡을 하면 들이마실 때에 배가 올라오게 되지만 실제로는 배가 내려가는 경험들을 많이 한다. 지시문을 조금 바꿔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몸이 무겁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부정적인 것들을 억압하고 피하려고 하지만, 사실을 미리 알아차린다면 몸을 쉬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더 힘들어지지 않게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려고 했다.

  특정 집단원의 사건-생각-행동/감정을 탐색하면서 일부 집단원에게 자신의 경험들을 떠올리게 해서인지 화가 나고 비난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당시 집단원에게는 그럴 수 밖에 없는 맥락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모인 것은 누군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단은 잠시 보류하자는 말이 어떻게 들렸을까. 정말로, 회기를 거듭하면서 집단원의 현실적인 어려움-저조한 신체상태, 주변의 도움이 부재한 환경적 요소-가 드러나면서 그 집단원을 이해했고, 그 과정에서 그 집단원 역시 '내가 그동안 사람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자신의 대처방식에 대해서 자각해나갔다.

   한편으로는 우울감과 같은 기분을 다루기 위해 치료에서 꼭 필요한 '생각의 실수'를 설명하는 것은 항상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나조차도 그 실수들을 정의하고 사례에 맞게 이름 붙이는 작업이 굉장히 복잡하고 따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단 최대한 예시를 통해 설명하되 지나치게 힘을 쏟기보다는 집단원들의 문제에서 '생각의 실수가 무엇인지' 찾아주는 것에 집중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다. 또 어떤 생각의 실수인지 분류해주는데 공 들이기 보다는, 그것이 어쨌든 '생각의 실수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했다.

  회기를 마무리하면서는 특정 집단원이 회기 내내 참여하지 않았고 질문에도 반응을 하지 않아 멋쩍은 정적이 오래 흘렀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회기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만성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그의 고통을 반영해주고, 집단원들에게도 다시 한번 알려야 했다. 그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이 자리에 있었으며 개인적인 아픔으로 인해 집단에 참여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돌려주었다. 어떤 집단원은 자신도 만성 통증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가까워졌고 어떤 집단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부재에 대해 이해하는 듯 보였다.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명상을 하면서 계속 강조했던 것은 명상에는 도달해야 하는 어떤 이상적인 상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점검하는데 익숙하고, 명상에서도 이게 '명상'을 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을 품기 마련이다. 항상 우리에게 붙어있는 목표, 생각들, 걱정들, 감정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따라서 생각, 걱정, 감정들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적도 없다. 그런 것들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다시 의도적으로 호흡으로 신체감각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집단원들을 점차 생각을 메타인지적으로-그러니까 한발짝 떨어져서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바라보게 된다. 생각에 붙어버린 나머지 우울해지고 화가나고 계속 걱정이나 후회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아 내가 이런 생각, 감정이 들고 있구나' 알아차리면 일단 잠깐의 pause를 가질 수 있다.

  마지막 회기에서도 여전히 집단원들은 명상이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알아차린다,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자연스럽게 언어로 표현했으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해보아야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아직 일상에서 명상을 생활화하지 않는 집단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새롭게 느끼는 감각적인 경험들에 대해 인식하고 표현했다. 정수리 사이의 근육으로 호흡이 흘러들어오는 느낌을 보고하기도 했고, 타인의 마음은 내가 다스릴 수 없다는 깨달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어떤 집단원은 이 모든 작업들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여기에 오는 것 자체가 좋았다'고 언급했다. 타인의 이야기에 기꺼이 귀담아 듣는 사람이라는 점, 우울감이나 공허감 때문에 피하고 있는 대인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 같았다. 여기에 오기 위해 몸을 단정히 하고 또 우울감을 다루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1주일에 1시간 집단에 와서 스스로를 돌봐주자, 이 집단이 끝나고 하루에 10분이라도-명상, 산책, 맛있는 것 먹기, 무엇이든- 나를 돌봐주는 시간을 내주자고 힘주어 말했다. 나조차도 하루 24시간 중에서 스스로 배려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곧잘 나를 비난하거나 우울하도록 방치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것은 내게 다짐하는 말이기도 했다.


집단을 마치며

  서로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차올라 있는 집단 안에서 안전했고 따뜻했다. 4회기에 갑자기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으로 주저앉은 집단원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긋이 바라보던 A의 시선을 집단원들에게 돌려주기도 했고, 반복적으로 쉽게 화가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던 B를 이해해나가고 응원해주었던 장면들, 만성 통증으로 집단에 와도 많은 말들을 하지 못했던 C에게 서투른 말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던 순간들, 그 모든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휘발되겠지만 집단원들에게 의미있는 한두 장면이 남았기를 바랐다.

 

진행한 집단상담, 그리고 안전하게 상담받기

  마음챙김 명상에 기반한 인지치료(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MBCT)의 8회기 표준 프로토콜을 5회기 단기집단상담으로 변형하여 진행했습니다. MBCT는 우울증 재발에 대한 효과가 반복적으로 검증된 근거기반치료 중에 하나입니다. 안전하고 윤리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엄격한 수련 과정을 통해 공인된 전문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임상심리전문가(한국임상심리학회), 상담심리사(한국상담심리학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의 자격을 확인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심리상담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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