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팥크림빵 Apr 30. 2020

내 몸과 마음을 사랑해주기

심리상담 엿보기: 영희의 사례, 20회기

Photo by Christiana Rivers on Unsplash


  오늘은 20회기로 구성된 상담 과정을 여러분께 소개해보려고 한다. 영희는 허구의 인물이고 과거 경험들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실제 사례는 아니다. 영희는 진단적 평가를 통해 여러 우울 및 불안 장애를 진단받고 3년 간 약물 치료를 받았다. 대학교 3학년이 되던 시기부터 자신이 그동안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에 수년 째 거부해오던 상담 권유를 받아들이고 내원했었다.


초기: 1~3회기


  어색함, 설렘, 어렵진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시작하기 마련이다. 영희는 첫회기에서  '그동안 달라진 게 없다고 느껴서 하기로 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상담에 대해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지 들으면서 영희에 대해 알아간다. 상담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진행되는지에 대해 소개하면서 상담에서의 규칙들을 함께 설정한다. 규칙을 설정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편인데, 이때 비밀 보장의 원칙 등을 전달하며 상담에서 안전감을 형성해나가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규칙 설정부터 내담자와 함께 합의해나가고 내담자가 원하는 규칙은 없는지 살펴야 '함께 협력해나가는'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모험을 기꺼이 시작하기'처럼 근사한 명제는 상담의 궁극적인 목적일 뿐이다. 우리는 '상담'을 하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어려움을 다루기 위해' 만난 것이므로, 내담자에게 특정적인 목표를 함께 세울 필요가 있다. 영희는 우울감과 의욕 저하, 주의집중 어려움, 수면 어려움, 통제되지 않는 걱정사고를 주요한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서 확인 가능한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명료화한다. '우울감이 8점이었던 것을 3점으로 경감하기', '지금 수면시간이 4시간인데 6시간으로 늘리기'처럼. 그래야 상담의 진전을 모니터 할 수 있고 종결 시에 상담에서의 수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상담이라는 과정은 의미를 발견하고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목표 설정과 그에 대한 확인이 없다면 '그저 좋았다, 그저 그랬다'처럼 단편적인 기억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초기 단계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에 하나는, 우울의 심리적인 기제에 대해 교육을 하면서 '감정카드'를 통해 지난 1주일간 느꼈던 감정을 찾는 장면이었다. 우울한 기분의 증상이 그렇듯이 부정적인 정서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었지만 '자랑스럽다, 기쁘다'과 같은 긍정 정서를 꼽기도 했다. 영희는 회기를 마무리하면서 '좋았던 일도 있었던 거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라고 했다. 이후에도 영희는 이 장면을 인상적이었다고 표현했는데, 우울할 때 우리는 순간순간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지 않고 '그저 힘들었고 별로였던 하루'로 정리해버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희는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거기에서 또 힘을 얻기도 한다는 점을 돌려주었다.


중기: 4~17회기


  이제부터는 함께 합의한 구체적인 치료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사실 인지행동치료 접근에서 제안하는 대로 매 회기에서 다룰 경험들을 내담자에게 묻고 그것을 따라가는 과정이 조금 버거웠다. 왜냐하면 자칫 상담이 중심을 잃고 '잡담'하는 시간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경계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상담자의 불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내담자가 말하는 것을 최대한 따라가면서 증상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검증된 우울과 불안을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고 함께 연습했다.


  일단 통제할 수 없는 걱정, 자기 비난이 지속되면서 주의집중 어려움과 수면 어려움이 이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에 호흡명상을 연습하고 매 회기마다 연습해오기로 한다. 과제를 내는 것은 여전히 부담이 되는데 과제를 하지 않으면 또다시 자기 비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여 과제를 설정할 때에는 영희가 과도한 목표(이를테면 매일)보다는 일주일에 몇 번은 해볼 수 있겠는지 충분히 합의할 필요가 있고, 그 후에는 구체적인 시간, 장소 등을 함께 설정해본다. 점심을 먹은 후 햇빛이 잘 드는 거실에서 해볼 것인지, 잠자기 전에 스탠드를 켜고 해 볼 것인지, 혹시 정해둔 화요일 수요일 오후에 하지 못했다면 금요일 오후에 1번의 예비 시간을 추가로 계획한다.


  그러면서 기분과 생각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시간표를 제공해서 일주일을 기록해오도록 한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하고 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의 감정이 똑같아보일지라도 사실은 우울이 9점-> 7점 -> 8점 식으로 변하는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일부분 다르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이후에는 내담자가 다루고 싶었던 1주일 동안에 느꼈던 강렬한 감정의 순간을 다룬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다면 거기에 혹시 생각의 오류는 없었는지 찾아나가고, 긍정적 감정이 들었다면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회상하면서 그 경험의 이모저모를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상담이란 좋지 않은 감정과 기억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견딜만한 수준으로 느끼고 줄어든 긍정적인 감정을 다시 느낄 필요가 있다.


  중기에는 치료 관계에 적응을 하면서 부침도 찾아온다. 이전에 썼던 [심리치료에도 허니문 기간이 있다] 역시 그런 부침 속에서 다시 상담자로서 존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믿고 기다릴 뿐이며 다시 돌아왔을 때 상담의 필요성이나 변화 동기 등에 대해서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상담 목표를 함께 수정한다.


  생각 다루기, 감정 다루기가 상담의 전부는 아니다. 영희의 경우에는 어렸을 적부터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자율성 형성'과 관련된 갈등이 있었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모두 그분이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면 된다'라고 수없이 교육받았던 순간들이 독립된 존재가 되고자 꿈틀대는 내적인 갈등으로 이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기본적인 신념은 의욕을 떨어뜨렸고 성취를 해도 스스로 충분히 칭찬해줄 수 없었다. Erickson은 심리발달 단계 이론을 통해 사춘기 시기에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영희가 해결하지 못한 자율성 획득에 대한 갈등은 자연스럽다. 또한 모험을 택하기보다 '고통스럽지만 익숙한' 지금에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다. 호기심 어린 태도로 어떤 감정었는지 지금은 어떤 생각 때문에 괴로운지 구체화한다. 만약 그 괴로움이 너무나 커진다면,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곁에서 혼란함과 불안을 읽어주고 함께 버텨줄 뿐이다. 그렇게 불안하지만 오롯한 주체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어쩌면 영희는 이 자율성의 갈등 때문에 우울과 불안의 터널에서 오랜 시간 힘들었던 게 아닐까. 혹시 상담 관계 내에서도 자신의 자율성이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 점검해보게 됐다. 2-3회기 정도 과거 경험으로부터 받았던 압력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이해하면서 점차 감정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짐을 느꼈다. 새로운 결정 앞에서 겪는 불안과 혼란스러움도 안정되어 갔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강력한 신념에 대해서 작업할 준비가 됐다. 매일매일 겪은 사소한 생각의 오류에서 이제는 스스로에 대한 부당한 판단에 대해 도전하고 수정해나가는 작업을 반복한다.


종결: 18~20회기


  영희는 호흡명상을 점차 자주 하지 않게 됐지만 사실 '계속해야 할' 의무는 없다.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찾아오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면 된다. 상담 목표가 대부분 해소되면서 초기에 객관적인 우울 검사의 점수가 고도였던 것에서 경도 미만(정상)으로 내려와 있었다. 이제 상담 경험을 정리하기 위해 배운 기술들, 삶의 변화, 목표들을 적어본다. 영희는 규칙적인 일상생활의 소중함을 받아들였고, 덮어두고 표현하지 않았던 것들을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앞으로의 장기적인 목표 중에 하나는 '내 몸과 마음을 사랑해주기'였다. 사실 상담을 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영희는 그렇게 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것을 홀로 해나갈 준비가 됐다.



  안전하고 윤리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엄격한 수련 과정을 통해 공인된 전문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임상심리전문가(한국임상심리학회), 상담심리사(한국상담심리학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의 자격을 확인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심리상담 엿보기

1. 집단상담 엿보기: 만성 우울증, 5회기

2. 개인상담 엿보기: 영희의 사례, 20회기 (now)

이전 02화 상희씨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