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수련 과정에서 받았던 집요했던 질문 중에 하나는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부분이다. 이를테면 "일이 쏟아지고 끝내기 어려울 때 어떻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풀겠다, 친구를 만나서 푼다 고 답변을 하면 '그럴 시간조차 없으면 어떻게 할거냐'며 곧바로 질문이 돌아온다. 심리학을 백날 배워도 의미 없다고 장난섞인 푸념을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배운게 있다면 무의미해보이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확신이었다. 그 시간이 있어야만 일과 공부도 가능하다는 점 말이다.
답변은 '운동을 하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에 주말 1-2시간이라도 하고 와서 다시 일을 하겠다'였다. 돌이켜보면 거의 일에 인생을 바치겠다는 식의 면접이었던 거 같고 그만큼 기회가 절실했다. 한편 누군가는 요가, 암벽 등반, 즐거운 대화 같은 것들은 그럴 힘이 남아있거나 내켜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최근 임상심리학에서는 다시 행동치료적 접근에 주목하고 있다. 굳이 우리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다루지 않고도 즐거운 활동을 늘리는 '행동활성화 behavioral activation'가 기존의 심리치료나 약물치료 만큼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반복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 신체적인 피로감은 즐거운 활동을 늘림으로써 완화될 수 있다. 힘들고 지칠 때에도 즐거운 활동을 줄이지 않고 지속하는 노력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은 많지만 감각에 몰두하는 활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 일찍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 flow'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최근에는 '마음챙김 mindfulness'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여기에서의 경험을 강조하고 있으며 우울감, 불안감을 비롯한 여러 심리적 불편감을 줄여준다는 점이 반복 입증됐다.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지내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몰두할 수 있는 일들 말이다. 거창할 필요 없이 차를 우려서 따뜻한 향기를 맡거나 숨이 차오를 정도로 짧은 러닝을 해도 좋다. 누군가에게는 일기를 쓰거나 식물에 기꺼이 관심을 쏟고 돌보는 일이 될 수 있겠다. 무의미해보이는 시간은 심리적인 풍요와 윤택함을 준다는 점에서 무의미하지 않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다채롭다. 햇빛에 비친 나뭇잎들의 오밀조밀한 겹침, 맨발로 딛은 마룻바닥의 차가움과 압력, 크로스핏에서 머리로 쏠리는 열기와 그 사이로 흐르는 땀. 이런 경험들만이 언어와 생각에 갇히지 않은 사실이며 참을 수 없는 기쁨을 준다. 오늘 우리는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 어떤 진실을 감각해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