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를 받기로 시작하고, 치료자는 어려움에 대해 용기를 내어 변화하려는 내담자에게 변화를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 마련이다. 특히 처음 치료를 시작하는 치료자는 '전문가로서 앉아 있으니 해결해야 주어야 한다'는 불안감에 영향을 받아 충분히 듣기보다는 즉각적인 개입을 하게 된다. 모든 치료적 개입은 의도를 가지고 해야한다는 가르침을 실전에서 실천하기까지 숱한 좌절과 통찰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첫 내담자를 치료가 진전 없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되다가 7회기 만에 drop되었던 경험이 있다. 치료를 진행하면서 실패 사례에 해당하는 개입들을 하면서, 수퍼바이저로부터 개입의 방향과 치료자의 불안감에 대해 자주 지도받았다.
당시 나의 불안감의 대부분은 치료자로서의 자신감과 실제 역량의 부족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실습 시기에는 사례회의와 수퍼비전을 통해 보완을 해나가는 장치들이 존재하지만, 오롯이 내담자와 치료자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그것들이 발현되기까지는 치료자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치료가 성공하고 진전되는 것에 대한 의심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며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변화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치료자는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것을 점검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중심 상담에서 제시한 '건강한' 치료적 관계의 조건 중 일부를 함께 읽어보자*.
1. 상담자는 자신의 목표와 의도에 대해 개방적이다
- 치료적 접근에 따라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지만 인간중심 상담에서는 '즉시성'과 '모든 인간의 성장하려는 욕구'를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인간은 현재 상황에서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므로 내담자의 자기 발견의 여정에 치료자는 함께하는 것이다.
2. 상담자는 내담자에 대해 책임감이 있는 것이지 그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판단받거나 기대나 역할이 부여되지 않는 환경을 제공할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만, 내담자의 선택이나 변화를 책임지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내담자를 한 인간으로 존중한다는 의미이며 치료에서 혹은 치료 밖에서의 선택과 변화는 내담자의 몫이다. 치료자는 평생 내담자와 함께하며 결정을 도와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결국 치료의 목표는 독립된 존재로서 삶을 꾸려나가도록 하는 것이며, 치료는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변화를 감수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법을 연습하는 과정이 된다.
3. 상담자는 내담자를 조종하지 않지만 자신이 조종당할 준비는 되어 있다
- 내담자가 서서히 스스로가 믿을 만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상담자부터 믿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가면을 벗기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그러한 속임을 통해 내담자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밝히려고 애쓰는 것은 치료 장면 바깥에서도 반복되는 일이며, 치료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할 존재이다. 내담자는 존중받고 안전하다고 느끼면 위협감이나 불안감에서 오는 조종을 하지 않기 시작한다.
- 다음 화에서 계속
*참고문헌: Brian Thorne, Dave Mearns <Person-Centred Counselling In Action (인간중심 상담의 임상적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