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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Dec 26. 2020

[인지행동치료 원리와 기법] 함께 읽기 -1

함께 읽는 즐거움

Photo by Sincerely Media on Unsplash


  얼마 전 2020년을 결산하는 글을 남기면서 읽은 책에 대해서 짧게 소개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꾸준히 기록하며 정리하고 동시에 뭔가를 생산해낼 수도 있다는 게 이 취미생활을 하는 이유이니까요. 오늘 소개할 책은 11-12월에 걸쳐서 1개월 간 읽은 <인지행동치료 원리와 기법>입니다.


  제목만 본다면 입문서에 가깝지만 이 책을 읽은 건 권정혜 교수님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교수님은 20년 이상 인지행동치료자로 활동하면서도, '심상'과 같은 새로운 치료 흐름을 받아들이고 연구를 병행하는 심리학자입니다. 그동안 인지행동치료를 공부하며 상담을 해왔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이 책을 읽으면서 명료하게 정리되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도 전반부에 해당하는 [인지행동치료의 기초] 를 다뤄볼까 합니다.



1. 치료적 동맹과 협력적 경험주의 (p. 17)


● Beck (1976)은 처음부터 CBT에서 긍정적인 치료관계가 핵심적인 요소임을 강조했다. 다른 치료와의 차별점은 CBT에서 확고한 치료적 동맹은 치료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 치료자는 내담자야말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전문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내담자 스스로 치료 과정에서 자기경험의 원자료를 최대한 제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


● 내담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인지치료에서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CBT가 경험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여타 상담 이론과 마찬가지로 인지행동치료 교과서에서도 '치료적 관계와 공감'이 중요한 치료적 요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CBT가 인간중심 상담이나 게슈탈트 정서중심 상담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질문이 계속됩니다. 첫 번째 인용에 특히 잘 드러나고 있듯이 CBT에서도 공감이나 치료적 관계가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변화를 이끄는데 충분하지는 않다고 본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Rogers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진솔성, 공감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충분하다고 보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죠.


  지금 제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CBT의 입장에 가깝습니다. 내담자가 어려움을 겪는 주호소문제가 얼마나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강렬한 발달적 기원을 가진 문제인지에 따라 치료적 관계와 공감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유지될 수 있을까요?


  상담이란 결국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만남이기 때문에 종결과 홀로서기를 전제하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유발하는 기제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스스로 치료자가 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CBT에서는 그 연습을 치료자와 협력적으로 함께 하면서 서서히 독립을 준비하게 됩니다. 더욱이 생각과 행동, 그리고 감정을 다룬다고 해서 지시적이거나 비공감적인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공감과 협력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오해와 진실").



2. 공감적 의사소통 (p.83)


● 상담자들은 흔히 공감은 내담자의 감정을 반영해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감정을 공감해 주는 데 그치게 되어, 감정과 연관되어 있는 더 깊은 내면세계의 탐색 과정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인지행동치료자들이 치료과정에서 갈 길이 바쁘다고 생각하여 내담자와 충분히 공감하고 내면세계를 탐색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필자는 치료 초반에 좀 느리게 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내담자의 말을 공감적으로 경청해 주어 내담자의 경험을 깊이 있게 탐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감은 이미 시리즈로 글을 썼던 영역 중에 하나입니다("공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여기서 강조하는 공감은 감정의 반영을 넘어서, 연관된 생각과 행동들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치료자가 호기심 어린 태도로 질문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내담자가 느낀 감정과 생각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치료자로서는 어떤 맥락과 경험들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점들을 치료자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질문함으로써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며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전 글들에서 밝혔듯이 저 역시도 CBT를 처음 시행할 때에 '인지행동치료'라는 이름 아래 생각과 감정의 관계를 밝히고 설명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빨리 문제 목록을 구체화해서 만들어야 해, 이제 각 문제에 대해 효과적인 개입을 시작해야 해,라는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급한 개입들은 비-협력적이고 비-공감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CBT의 기본정신과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CBT의 회기를 구성할 때 초기 3-4회기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으면서 내담자를 이해하고 치료적 관계를 맺는 '준비 단계'로, 치료 회기 수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용과 시간 효율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도 초기 작업에 무척 공을 들이면서 무리하게 즉각적 개입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거죠. 결국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라는 '상담' 관계보다 '인지-행동'을 강조하는 주객전도를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치료에 대한 기대와 희망 고취 (p. 86)


● 내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적으로 반응해 주는 것 못지않게 라포 형성에 중요한 것은 치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불러일으켜주는 것이다.


● 무엇보다도 상담자의 내담자의 문제를 다뤄주는 전문성이나 치료에 대한 자신감이 내담자의 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 첫째, 치료 초기에는 상담에 대한 기대감을 줄 수 있는 언급을 기회가 되는대로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


● 둘째, 내담자의 문제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해 주는 것


● 셋째, 내담자가 호소하는 여러 문제가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CBT의 원리를 들을 쉽게 소개하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이 꼭지는 그동안 쓰려고 준비했던 '심리상담에서 심리교육이 필요할까?'라는 주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특히 CBT에서는 내담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떤 기제로 설명될 수 있는지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요. 이 부분은 자칫 지시적이고 비-공감적으로 흘러가기 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어서 시행착오를 겪기 쉽습니다. 그러고 나면  '이렇게 위험부담이 있는 오리엔테이션이 정말 필요한가? 교과서와 연구에서는 왜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을까?'하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성급한 개입의 압박을 어느 정도 벗어낸 다음에는, 내담자의 어려움을 공감적으로 듣고 질문하면서 구체화된 내용들을 통해 내담자와 감정, 생각, 행동을 구슬을 꿰듯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담자의 언어로 펼쳐진 어려움의 맥락을 CBT의 맥락과 연결 지어 요약해 주는 과정이 된다면, 심리교육이 일방통행으로 끝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내담자에게 치료에 대한 기대와 변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초기에 상호협력적인 심리교육을 통해 기대와 희망을 심어준다면 이후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전과 후퇴의 과정도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초석이 됩니다.


  나아가, 치료자가 전문가로서 역량과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도 정말 중요한 요인입니다. 내담자는 안전하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관계를 찾아왔는데 치료자가 자신의 역량이나 전문성, 상담의 효과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과연 '변화할 수 없다'라고 믿는 치료자에게서 내담자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이럴 때에는 치료자가 적극적으로 공부를 하거나 슈퍼비전을 통해 지도를 받으면서, 상담을 하는 50분-1시간 만큼은 용기 있고 희망을 불어넣는 태도로 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사례개념화 (p.130)


● 사례개념화를 잘하는 요령 중: 1)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려보거나 써본다, 2) 입 밖으로 말해보아 쉽게 설명이 되는지 확인한다, 3) 내담자의 강점에도 귀를 기울인다.


● Hollon (2006)의 세 다리 의자(three-legged-stool) 개념화: 현재 상황, 초기 아동기 사건, 치료적 관계의 3요소!


    일단 치료가 시작되면 내담자의 어려움을 세분화된 틀을 통해 명료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계속됩니다. 이러한 사례개념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수정되는 잠정적인 가설입니다. 치료가 진행됨에 따라 내담자의 문제나 어려움에 대해 서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다른 지점이 있다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면서 공유된 개념화로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이제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일심동체를 이루고 하나의 '팀'으로서 어려움을 접근하게 되는 거죠.


  사례개념화는 개별 내담자의 맥락에 따라 바뀌어야 하지만 자칫 기계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책에서는 단지 머리로 정리되었다고 끝내지 말고 글이나 그림으로 요약해보고 입으로 말해보면서 쉽게 이해되는지를 확인해보기를 권유합니다. 내담자의 강점은 상담을 하면서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치료적으로 혹은 일상생활에서 연결할지는 아직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Hollon의 세다리 의자 개념화는 처음 본 기법인데, 초기아동기 사건과 치료적 관계를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려움이 치료적 관계에서는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 미리 생각해 본다면 관련된 상황이 발생할 때 놓치지 않고 치료적으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망한 거다'라는 생각 때문에 사소한 실수에도 포기하는 어려움을 가진 내담자라면, 생활기록지를 '까먹었다, 놓고 왔다'라고 말하는 내담자의 행동 이면에 '혹시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다고 여겨 포기하진 않았을지' 점검해보고 그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더불어 초기아동기 사건은 강력한 핵심신념이나 감정반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서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반응이 지금 현실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다룰 수도 있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56832



  안전하고 윤리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엄격한 수련 과정을 통해 공인된 전문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CBT를 가장 많이 연구하고 시행하는 전문가 집단은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권정혜, 2018). CBT를 고려하신다면, 임상심리전문가(한국임상심리학회), 인지행동치료전문가(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의 자격을 확인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쓰다 보니 길고 불친절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오늘은 진짜 논문의 결과 부분을 써야지' 다짐했는데 딴짓(글쓰기)을 하니까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고요. 논문에 대한 불안과 회피행동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실감합니다(..) 혹시 읽다가 떠오르는 의견이나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환영합니다! 다음에는 책의 후반부, [인지행동치료의 기법]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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