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출판된 <Psychodynamic therapy: A guide to evidence-based practice> 을 읽고 있습니다. 한주 동안 읽은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번 5-6주차에는 치료 동맹과 '문제'에 대한 일반론 그리고 정신역동 관점의 특징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읽을수록 지치기보다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5주차 pp. 71-85.
이번 주 분량은 다시 읽어보아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었어요. 치료동맹의 3요소(과제, 유대, 목표)와 정신역동에서의 치료동맹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1) 내담자와 치료자의 역할 과제 task: 내담자는 회기에 참석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묘사하고, 치료자의 관찰을 듣고 수용하려고 노력하기. 회기가 진행되면 스스로 이해한 것을 실행해보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숙고해보고, 숙고한 내용을 토대로 다시 적용해보기. 치료자는 열심히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고,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내려두고, 내담자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해나가고, 이해된 내용을 내담자와 효과적으로 공유하기. 치료자는 새로운 지각 perceptions,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 그리고 새로운 행동을 촉진해야 한다.
내담자의 역할 과제는 치료자의 과제에 비해 어려운 조건이고 어려워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내담자들이 솔직하게 개방해도 될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 있고, 바로 그 부분이 어려움을 유발하는 기제일 수 있다고 느끼거든요. 저자들은 챕터 말미에 치료자가 내담자의 역할 과제를 부드럽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알려줄 뿐만 아니라 치료장면에서 역할모델이 되어 실천하며 보여줄 필요가 있겠죠.
2) 유대 bond 부분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지점은 '치료자'로서 느낄 수 있는 기쁨에 대한 구절이었어요. "치료자로 존재하는 일의 가장 멋진 점 중에 하나는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갈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내담자를 최상의 상태로 볼 수 있는 특별한 방식으로 잘 알게 되고, 치료자는 최상의 상태에서 그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서 그들을 알게 된다."
치료자도 치료 장면 바깥에서는 항상 따뜻한 자세로 존재하기란 어려운데요.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타인을 만날 수 있고, 호기심과 공감으로 깊이 연결될 수 있어서, 상담을 계속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3) 역할과제와 유대가 적절한데도 뭔가 놓치고 있는 느낌을 주는 사례를 통해서 목표 goals가 공유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어려움과 목표가 합의되지 않으면 치료작업은 오히려 치료동맹을 균열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기에 변화 목표가 무엇인지, 같은 목표로 함께하고 있는지를 개방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살사고나 자살시도 경험을 묻는다고 해서 자살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며 직접적으로 탐색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드러나지 않는 갈등이나 균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 부담에 대해 치료자 스스로 작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치료자가 혹시 갈등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솔직하게 묻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는지 점검해보게 됩니다.
4) Greenson의 치료관계 3차원을 통해서 정신역동의 개념을 좀 더 이해해 봅니다. 전이, 저항, 상연 enactment에 대해서요. 전이가 과거의 관계 패턴의 재현이라면, 저항은 그 패턴을 논의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동이고, 상연은 실제 치료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라고 이해됩니다. 그리고 치료동맹은 전이와 항상 공존한다는 구절도 기억에 남습니다. 전이와 저항은 필수불가결하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내담자를 이해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열쇠이니까요. 전이와 저항을 작업하는 만큼 작업동맹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5) Fredrickson 2001의 Broaden and build theory를 통해서 보다 지지적이고 긍정적인 정서경험을 불어넣는 치료자의 역할도 강조합니다. 모든 대상이 좋고 나쁨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존재인 것처럼, 모든 관계도 좋고 나쁜 감정을 모두 경험하게 됩니다. 저자들은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가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경험될 수 있는 독립적인 무엇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치료장면에서도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는 복합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고, 긍정 정서도 함께 다루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긍정 정서는 부정 정서에 빠져들지 않고 거리 둘 수 있게 함으로써 시야를 넓혀 문제를 바라보도록 합니다.
6주차 pp. 86-104.
먼저 치료 동맹을 촉진하는 구체적인 전략들을 명료하게 제시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13가지를 곱씹어 보고 싶어서 번역을 해보기도 했는데요, 전반적으로 따뜻한 치료자의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중심상담, 대인과정적 접근, 인지행동치료에서 필요한 관점이 정신역동치료에서도 수렴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1) 치료자가 회기에서 너무 열심히 임하지도 수동적이지도 않아야 한다는 점, 2) 내담자가 치료자를 좋아하도록 격려하지 말고 존중하도록 격려하라는 점은 '맞아 정말 그렇지'라고 느끼면서도 참 어려운 지점이에요. 회기에 들어갈 때마다 주문처럼 한 번씩 외워야겠다 싶은 구절이었습니다.
치료자는 내담자의 개인의 역사와 경험에 대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공감을 하여야 하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문제, 즉 반복적인 관계 패턴은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5장에서는 정신역동치료 이론을 기반으로 탄탄하게 개념화의 틀이 마련된 6개의 주요한 문제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의합니다.
그러면서 정신분석에서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이론과 개념화가 풍부하게 만들어져 왔지만 경험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웠고,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초기 발달경험을 강조하느라 유전적 취약성이나 환경적 요소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였다고 지적합니다. 최근에서야 통일된 정신분석적 진단과 개념화의 틀이 개발되었죠. 한편 gold standard로 쓰이는 DSM 역시, 증상 중심으로 임의적인 구분을 통해 분류하고 있어서 같은 장애로 진단을 받더라도 굉장히 다른 특성과 예후가 관찰된다는 한계가 분명하죠.
저자들은 실용적 정신역동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내담자의 문제를 개념화할 때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할 부분으로, 심리사회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과 내담자의 강점을 제시합니다.
1) 먼저 성별, 인종, 민족과 같은 심리사회적인 요인이 문제 자체와 진단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편향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최근 출판된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에서 지적하듯이 '여성의 경우 ADHD가 과소진단되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주장과도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이외에도 CBT 치료효과가 높은 사회불안장애의 경우, 한국 문화에서는 치료받을 문제로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따라서 내담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이 단지 유전적 취약성, 심리 내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려움의 형태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내담자의 어려움에 대해 섣부른 공감을 하지 않고 이해해나갈 수 있습니다.
2) 한편 내담자의 약점뿐만 아니라 강점을 통합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샐리그만이 제안한 6개의 미덕과 그에 해당하는 성격적 강점을 소개하기도 하였는데요. 임상심리학 공부를 하고 수련을 받다 보면 병리나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고 어느새 '결정론자'가 되기 쉽습니다. 치료자가 무력감을 느끼면, 그 무력감은 내담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담자의 강점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가치 value를 찾는 작업, 그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행동을 촉진하는 접근은 치료자와 내담자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