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현적 나르시시스트, 나를 마주하다

by Architect

사랑하는 10월의 가을 나들이를 포기하고, 아이들의 아우성을 이겨내며 연수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듣고 싶었던 강의였다. 어제 강사님께서 하신 말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힘든 사람을 사랑하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분이 청년 단체를 돕는 과정에서 갈등을 경험하며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2년 전 나에게도 있었던 갈등의 기억이 떠올랐다. 경비 정산을 둘러싼 친한 언니와의 충돌이 그 시작이었다. 그때 나는 평소와는 달리 분노를 표출했고, 내 감정의 정당성을 위해 뛰어들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갈등 이후, 나는 내가 느낀 서운함과 아픔을 정당화하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나의 태도는 무모하고 미성숙했다. 그 언니와 마주칠 때마다 불편함이 남아있고, 그때의 부끄러운 나를 떠올리게 된다.


갈등 이후, 나는 그 언니의 힘에 눌려 내가 너무 무리하게 충돌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내가 정당하다고 믿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성급했고, 차분하게 상황을 풀어나가는 대신 내 감정을 앞세워 버렸다. 남편이 관계를 생각해서 참으라고 했을 때도,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감정들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아픈 사람일까?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겉으로는 겸손하거나 상처받지 않은 척하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고,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 때 격하게 반응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을 나에게서 보다

내가 그 언니와 갈등을 겪었던 이유는 단순히 경비 정산에서 불합리함을 느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발생한 비교자존감의 문제였다. 그 언니는 늘 의연하고 강한 사람으로 보였다. 반면 나는 다른 이들 앞에서 나의 부족함을 숨기고 싶어했다. 내면적으로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고, 그 감정을 폭발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겉으로는 조용하거나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면 상처를 받고 분노하게 된다. 나는 그 언니에게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힘을 보았고, 그로 인해 나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로 인해 내가 받은 상처를 인정받고 싶었고, 그것이 충돌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고통을 상대가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 스스로가 그 아픔을 해결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스스로를 마주하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나의 불편함은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갈등이라는 것을. 그 언니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지나치게 집착했고, 나의 아픔을 외부에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나의 감정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결국 이것은 나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나는 여전히 갈등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내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사랑은 힘들다. 특히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 언니를 통해 나 자신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더 성숙해지고, 나 자신을 더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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