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0 개똥이와 말똥이, 그리고 태교

by 정신과의사 감성돔

폭풍 같았던 아내의 입덧도 지나갔다.

어느 정도 안정기가 접어들었을 무렵 고민이 생겼다.

바로 태명이었다.

결혼반지도 맞추지 말자고 했을 정도로 실용적인 아내는 태명을 짓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직 듣지도 못할 텐데 태명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주어야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지 않겠는가.

대상을 대상으로 인식하는 데는 언어, 이름이 필요하다.

괜찮은 이름을 지어보려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많은 태명들이 존재했다.

튼튼이, 기쁨이, 무럭이, 꿀이, 별이, 달이 등등..

하지만 감정표현이 서툰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나 낯간지러운 이름들이었다.

몇 차례 소리 내어 불러보았지만 좀처럼 입에 맞지 않았다.

다른 이름이 없나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세자 같은 귀한 아이가 악귀나 액운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부러 볼품없는 아명을 지었다고 한다.

산, 동이, 공이 같은 평범한 이름으로 불렸고 출처는 정확하지 않지만, 개똥이 같은 이름도 쓰였다고 한다.

수많은 태명 후보를 정리해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건 순우리말이고, 이건 너무 흔하고, 이건 너무 오글거리고, 이건 좀 튀지 않아?"

결정장애가 있는 나의 장황한 설명을 한참 듣던 아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몰라. 그냥 개똥이 말똥이로 해."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개똥이, 말똥이가 되었다.



이름 다음은 태교였다. 이건 좀 더 복잡한 문제였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태교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양수 속, 탯줄로밖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아기가 뭘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바깥공기의 진동은 어차피 물속에선 잘 전달되지 않을 텐데'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산모가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것이 나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독서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클래식을 듣는 등 전통의 방법들이 있었지만 갑자기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아내는 태교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를 강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임신 말기가 되어 몸이 무거워진 아내는 일을 쉬고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임신 자체도 피하고 싶었는데 일마저 못 하게 된 아내는 무력감에 괴로워했다.

설상가상으로 임신 말기에는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했다.

아이들의 몸무게가 주 수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우리에게 최대한 버텨보자고 했다.

뱃속에서 몸무게를 키우는 것이 아이들에게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내는 자유를 잃었다.

"하루가 너무 길어. 시간이 안 가.."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로 종종 눈물을 흘렸다.

누워있는 아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주로 넷플릭스가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편안한 시청을 위해 거실에 있던 TV도 안방 침대 앞으로 옮겼다.

이후 그녀는 드라마를 자주 보았다. 당시 유행하던 '킹덤', '스위트홈' 등의 피가 튀기고 스릴이 넘치는 작품들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좀비와 괴물로 태교를 했다.

어차피 아이들은 보거나 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행복해했기에 말릴 수는 없었다.

좀비면 어떠랴, 산모가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태교였다.





개똥이편집.jpg 개똥이의 탯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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