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는 이번 여행에서 교통과 숙소 이외에 유일하게 예약한 곳이다.
알함브라 궁전(Alhambra, 알람브라)을 보기 위해서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에 수화물을 보관하고 당일 투어를 할 만큼 알함브라는 스페인에서 꼭 봐야 하는 명소 중에 하나이다. 그 알함브라에서도 나스르 궁전(Palacios Nazaríes)은 유럽에 남은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로 손꼽힌다. 바로 그 나스르궁전을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보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하다. 알함브라의 다른 곳은 날짜만 정하면 되지만 나스르 궁전은 해당 날짜에 30분 단위의 입장 시간을 정해야 한다.
알함브라를 관람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별도로 더 자세하게 다루겠다.
스페인에 도착하는 날짜가 정해진 이후에도 처음에는 알함브라 궁전에 언제 갈지를 정하지 못했었다. 알함브라 공식 홈페이지의 예약을 조회해 보니 나스르 궁전의 입장 시간 일부가 이미 매진되어 있었다. 그라나다에 도착하는 다음 날을 선택하고 서둘러서 알함브라 입장권을 예약했다. 나스르 궁전을 포함해서 모두 입장이 가능한 일반 입장권(General Ticket)을 구매했다. 웹브라우저의 자동 번역을 선택하니 'General'이 '일반'이 아니라 '장군'으로 번역되어 잠시 당황했지만 그 외에는 큰 문제없이 예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나스르 궁전의 입장 시간은 오후 5시로 선택했다. 5시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 6시까지 남아있으면 낮과 밤의 궁전을 모두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었다. 결국은 반만 성공했지만 말이다.
알함브라 외관을 먼저 보기 위해서 니콜라스 전망대에 오르다.
니콜라스 전망대(Mirador de San Nicolás)는 그라나다의 알바이신 지구(Albaicín)에 있다. 알바이신 지역은 알함브라 북쪽에 있는 언덕 위로 이슬람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있는 주거지역이다. 니콜라스 전망대는 이 언덕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알함브라의 외관 전경이 잘 보이는 곳이다.
그라나다의 둘째 날 나스르 궁전을 오후 5시에 예약했기 때문에 오전에는 니콜라스 전망대에 가서 알함브라의 외관을 먼저 보기로 했다. 지도앱의 안내를 따라서 가다 보니 알바이신 지구로 가는 오르막 골목이 보였다. 말라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스페인의 길은 대부분 작은 돌들이 깔려있다. 알바이신 지구에 숙소를 정하면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에는 아주 만족하지만 오르막 자갈길을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후기가 많았다.
짐이 없이 산책 삼아 오르기에는 부담스러운 길이었고 말 그대로 이국적인 골목과 집들의 모습에 눈이 즐거웠다. 골목 중간에 알함브라가 보이는 조그만 카페도 있었는데, 이미 야외 테이블은 손님들로 모두 차 있었다. 커피 한잔이 생각났지만 실내에서 마시고 싶지는 않아서 계속해서 전망대로 올라갔다. 중간에 골목길 사이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골목을 구경하면서 올라가다 보니 지도앱에서 안내하던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지만 이른 아침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니콜라스 전망대의 첫인상은 동네의 넓은 공터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간 끝에 앉아서 알함브라를 바라보면 왜 수많은 여행객들이 이 전망대를 찾아오는지 저절로 이해가 간다. 전망대에서 알함브라뿐만이 아니라 그라나다 시내를 바라볼 수도 있다. 알함브라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은 것 같았다. 지도앱을 봐도 어디가 나스르 궁전인지 찾기가 어려웠다.
올라오는 골목에서 마시지 못한 커피가 생각이 났다. 니콜라스 전망대 주변에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 몇 개가 있었는데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카페는 El Balcon De San Nicolas 하나뿐이었다. 전망대에서 카페가 오픈하는 시간을 기다려서 바로 들어가니 오전에는 음식은 안되고 음료만 가능하다고 했다. 커피 한잔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내가 첫 손님이었기 때문에 알함브라가 가장 잘 보이는 난간 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전망대로 돌아오니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스페인 학생들의 수학여행처럼 보이는 단체여행객들도 있었고 기타 연주 버스킹 공연도 진행 중이었다. 운이 좋으면 플라멩코 버스킹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플라멩코 공연은 없었지만 기타 연주에 맞춰서 플라멩코를 추는 관광객은 볼 수 있었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본 알함브라, 그라니다 시내, 가는 길의 수도원, 골목길에서 본 알카사바
알함브라 궁전의 기억을 남기다.
오후에 알함브라 궁전으로 갔다. 그라나다의 문(Puerta de las Granadas)을 거쳐서 정의의 문(Puerta de la justicia)을 통해서 들어가기로 했다. 그라나다의 문을 지나니 우리나라에서 사찰을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와 비슷한 흙길이 보였다. 정의의 문을 통해서 알함브라에 도착하니 나스르 궁전(Palacios Nazaríes), 정원과 헤네랄리페(Jardines y Generalife), 알카사바(Alcazaba), 카를로스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 네 곳 모두의 입구가 가까이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디부터 갈지 순서를 정했다. 말라가에도 같은 이름이 있는 알카사바를 먼저 들어갔다. 암표 판매를 막기 위해서 외국인의 경우 티켓과 여권을 함께 검사한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여권만 검사를 했다. 티켓을 구매할 때 등록한 여권번호만 리더기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말라가의 알카사바가 궁전의 모습을 일부 포함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라나다의 알카사바는 전체가 요새의 모습이었다. 가장 높은 벨라의 탑(Torre de la Vela)에 올라가니 그라나다 시내 전체가 뻥 뚫려 보였다. 알카사바 곳곳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그라나다의 산과 알바이신 지구 그리고 밝은 갈색 지붕의 주택들을 모두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다음은 카를로스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으로 갔다. 무료입장이 가능한 곳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1층 출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원형의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더 멋있었다. 2층 전시관은 입구에서 직원이 국적을 물어보았다. 유럽연합 국민들만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South Korea"라고 말해도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기독교 관련된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슬람 왕조가 물러간 이후에 이곳에 기독교 국가가 세워졌음을 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는 다음날도 다시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정원과 헤네랄리페(Jardines y Generalife)에 들어가면서 여권 검사를 하는 직원에게 둘러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았다. 어른의 걸음으로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 정도면 나스르 궁전 입장시간을 맞추는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내가 공원과 정원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이슬람 정원은 다른 유럽의 정원과 다른 멋이 있었다. 작은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이 있었고 정돈된 나무의 모습도 달랐다. 11월의 그라나다는 햇빛이 비치는 곳은 따뜻하고 그늘 아래는 시원했다. 정원을 걷기에 최고의 날씨였다. 헤네랄리페 궁전(Palacio del Generalife) 안쪽은 말라가의 알카사바 내부 건물과 구조가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더 아름다웠다. 계속해서 분수가 나오고 있었고 음악처럼 물방울 소리가 들렸다. 알함브라에서 헤네랄리페 궁전의 위치는 나스르 궁전의 반대편에 있는데 시간을 보니 정원과 헤넬랄리페를 들어온 지 이미 1시간 이상이 지나있었다. 돌아가는 길도 1시간이 걸리면 나스르 궁전 입장시간을 놓치게 될 것 같아서 서둘러서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정원과 헤네랄리페를 모두 보는 데는 두세 시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막판에는 달려서 나스르 궁전(Palacios Nazaríes)의 입장시간을 겨우 맞출 수가 있었다. 나스르 궁전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시간이 되어도 한 번에 모든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원수를 나누어서 순차적으로 입장을 하도록 안내했다. 입장하는 순간부터 이색적인 천장과 기둥의 기하학적 조각들이 눈길을 끌었다. 유럽의 궁전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중동은 여행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능했고 동남아에서 보았던 이슬람 건축물과 비교를 해보니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자주 보지 못했던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스르 궁전은 30분 단위로 입장인원을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알함브라에서 가장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 뒤에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아주 힘들었다. 아라야네스 안뜰(Patio de los arrayane)에 도착했을 때 입장시간을 일몰 한 시간 전으로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해가 넘어가면서 안뜰로 들어온 햇빛에 반사된 건물이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나스르 궁전을 보지 않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궁전 안을 천천히 관람하고 있는데 안전요원들이 빠른 이동을 요구했다. 11월은 문들 닫을 시간인 6시까지 관람을 마치고 모두 나가야 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는데 5시 30분 입장을 선택했으면 시간이 부족할 뻔했다. 출구는 입구 반대편의 정원 안쪽으로 이어졌다. 일몰 시간이었지만 아직은 전체적으로 어두워지기 전이었다. 정원도 출입제한을 하는 곳이어서 아쉽지만 모두 밖으로 나와야 했다.
밖으로 나와서 보니 일몰 시간에 알카사바에 있었으면 서쪽으로 지는 석양을 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카사바 밖에서 니콜라스 전망대를 바라보니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니콜라스 전망대에 있는 사람들은 조명이 비치는 알함브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은 나도 저녁에 니콜라스 전망대를 올라서 그들처럼 조명이 비치는 알함브라의 전경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알함브라 주변을 걷다 보니 야간 관람을 하는 단체 관광객들이 모이고 있었다. 개인 관람객이 더 많았던 낮과 달리 야간에는 대부분 단체 관람객들이었다. 알함브라에서 내려올 때 사람이 거의 없고 어두운 길을 걸으면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조용한 사찰에서 내려오는 산길을 밤에 걷는 기분이었다. 조용하고 운치가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다음에 야간투어를 하게 되면 나도 단체관람을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위에서부터 알카사바, 카를로스 5세 궁전, 헤네랄리페 궁전, 나스르 궁전
그라나다 대성당 뒤편에서 영화상영을 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대성당 뒤에 큰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앞에 접이식 의자가 놓여 있었다. 혹시 말라가 재즈 페스티벌처럼 음악회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가 들었다. 아무런 안내가 없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지만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호텔에서 잠시 쉬고 다시 나와보니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새롭게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니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스페인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였다. 외국 관광객이 아니라 그라나다 시민들을 위한 행사였는지 자막 없이 스페인어만 나와서 잠시 구경을 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스페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라나다 대성당 광장의 영화제
그라나다의 둘째 날은 나에게 잊지 못할 알함브라의 기억을 남겼다.
『 알함브라 가는 길 (2023년 11월 기준) 』
낮시간에 걸어서 간다면 고메레스 길(Cuesta de Gomérez)과 엠페드라다 오솔길(Cuesta Empedrada)을 추천한다.
고메레스 길은 누에바 광장(Plaza Nueva de Granad)에서 알함브라의 정의의 문(Puerta de la justicia)으로 가는 돌을 깔아서 만든 비교적 넓은 길이다. 15분에서 20분이면 걸어가기에 충분하지만 오르막길이 부담스러울 때는 미니버스를 연결한 그라나다 시티투어열차를 타면 된다.
올라가면서 먼저 보이는 그라나다의 문(Puerta de las Granadas)을 통과하면 높은 나무사이의 흙길인 엠페드라다 오솔길로 갈라지는 곳이 나온다. 고메레스 길로 계속 올라가도 되지만 엠페드라다 오솔길을 따라가는 것이 조금 더 빠르다.
정의의 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알함브라에서 중요한 건축물 4곳의 입구가 모두 가까에 있다. 먼저 보기를 원하는 곳을 어디든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어서 좋다. 지도앱에 알함브라 주출입구로 나오는 알함브라 입구(Access Pavilion of the Alhambra)는 매표소가 있는 정원과 헤네랄리페입구에 해당한다. 정원을 가로지르면 다른 장소의 입구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