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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Nov 12. 2019

아플 땐 할머니에게 가요

약효가 센 할머니의 사랑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던 7살. 그날도 어김없이 동네 친구들과 경찰과 도둑 게임을 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나는 ‘도둑’을 맡아 놀이터와 빌라 이곳저곳을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저 멀리 나를 잡으러 오는 우리 집 옆 동에 사는 사내 녀석이 보였다. 나는 불굴의 의지로 달렸지만, 그 녀석에게 옷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쯤 했으면 나도 그냥 잡히는 게 상책 이건만, 난 포기하지 못하고 그 녀석 손에서 달아나려 발버둥을 쳤다. 그 반동에 못 이겨 그 녀석은 나를 놓았고, 난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하필 뒤로 넘어진 곳에 내 키만 한 나무가 있었던 게 문제였다. 그 속에 삐쭉 솟은 나무 돌기에 뒤통수가 쿵 하고 찍히고 말았다. 유치원 시절,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울지 않던 나인데, 너무 아팠는지 눈물이 맺혔다. 난 그 녀석을 매섭게 노려봤다. 엄연히 내 과실이었지만 괜히 심통이 났다.


언니는 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뒤에 봐봐. 에이씨, 일로와. 할머니한테 가자.”
내 모습을 지켜보는 동네 친구들의 표정이 심각했다. '웬만해선 놀랄 녀석들이 아닌데' 하며 얼른 뒤통수에 손을 대 보았다. 왜 이렇게 축축하지?


단언컨대, 내 생애 그렇게 많은 피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낯선 빨간 액체에 겁이 난 나머지 나는 엉엉 울었다.

집에 있던 할머니는 놀란 눈으로 나와 언니를 보았다. 하지만 곧 평정심을 찾고는 ‘약’을 찾으셨다.
“얼른 된장이랑 들지름 가져와.”
할머니는 아주 거침없고 단호하게 응급처치(?)를 했다. 나를 당신의 무릎에 눕힌 다음 내 뒤통수에 된장과 들기름을 듬뿍 발랐다. 그리고 하얀 거즈도 붙여주셨다.

출혈은 멈췄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됐다. 지금 세대의 엄마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응급처치지만, 다행히 나는 별 탈 없이 자랐다. 민간요법에 대해 많은 이견이 있다는 걸 안다. 민간요법의 무해함을 체험해서 인지, 나는 민간요법을 그리 거부감이 없다.


할머니의 민간요법은 내게 해롭지 않았다. 당신이 아는 한 최고로 좋은 걸 해주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됐을 거니까. 조손 가정에서 자란 한 사람으로서 민간요법의 해로움을 따져 늙은이를 무지한 사람으로 몰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할머니의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할머니 손에서 조금만 피가 나도 내가 다 따끔거리건만. 그 옛날 어린 손녀가 피를 흘리며 왔을 때 할머니는 얼마나 걱정됐을까. 이 심정을 그때 알았더라면 좀 더 조심하며 뛰어다니며 놀았을 텐데.

나는 아플 때면 할머니를 찾아가야 한다는 등식이 생겼다. 사랑니를 뽑았을 때도, 생리통이 심할 때도 나는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가 어리광을 피운다.
“할매, 사랑니 뽑았어.”
“사랑니 뽑으면 엄청 아픈디.”
“이거 봐. 엄청 아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으이고. 그거 그냥 뽑지 말지.”

사랑니를 뽑지 말라니. 할머니에겐 매복 사랑니든, 뭐든 손녀를 아프게 하는 건 뭐든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뿐인가 보다.

미련스럽게 걱정해주는 나의 늙은 천사 덕분에 웃음이 난다. 그런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파랗게 멍이 들 정도로 아팠던 발치 통증도 어느새 잠잠하다. 언제나 그렇듯 할머니의 사랑은 어떤 약보다 약효가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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