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
너의 음성에
몰래 웃음짓는다
그랬어
진짜?
힘들었겠다
그러니까
가끔씩 들려오는 한숨과
살짝 놀라는 호흡은
내 귀에 박혀서
제멋대로 재생된다
런닝을 하며 멜론 대신
최근 통화목록의 가장 첫번째를 누르는 너는
내 목소리를 듣는 게 그냥 좋다지
피부 같은 너의 큰 가방을 매고
유독 느린 걸음으로
나에게 걸어오는 너를 상상해
이내 안개 낀 안경을
탁자 위에 내려 놓고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냐고
내게 물어오겠지
네가 만약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오후 세시부터
네가 없다는 것에 우울해질 거야
난 어린왕자랑 달리
심술보가 많아서 말야
빠른 시일 내에
만나요
빈 깡통같은 호들갑보다
지금의 묵묵함이
좋다고
얼른 말해줘야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