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우물 2.0의 태동
# 생존에서 성장으로 (돌우물 2.0 버전)
법인 설립자본금 5천만원은 햇볕 좋은 날 눈 녹듯 금세 사라진다. 주먹구구식 장사가 아닌 이상, 관리와 전략을 위한 별도의 사무공간이 필요하고, 미래비전을 실행할 사람(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전신인 ‘쏘크라테스 떡볶이 1호점’을 오픈한 곳, 유동 인구가 많아 젊음과 성숙이 공존하는 공간, ‘마포구 공덕동’에 본사 사무실을 차렸다.
사무실 임차보증금 지급, 컴퓨터와 노트북 등 사무기기 구입, 각종 집기 구입, 식품 연구개발/브랜드디자인/마케팅/영업/가맹점 교육 등 F&B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한 필수인력 직원 채용 등에 자금을 집행하고 나니, 회사 자본금은 전액 소진되었다. 돌우물 직영점 수익금이 꾸준한 편이고, 가맹점 계약도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SPC사로부터 매월 3PL* 물류대행 수수료도 입금되고 있어 초기 자금 집행은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조금 무리해 새로운 음식 메뉴를 개발하고 표준화하기 위한 R&D 연구실도 오픈했다. 다행히 매장 몇 개를 운영하면서 모아둔 대표 개인자금도 회사에 빌려줄 수 있었고(가수금), 무엇보다 회사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컸다.
* 3PL : 제3자 물류. 돌우물은 가맹점 운영에 필요한 원재료 및 부자재 유통을 물류 전문업체에 아웃소싱(위탁) 중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서비스 사용자)은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물류에 들어갈 비용과 노력을 다른 곳에 투자함으로써 고객서비스를 강화시킬 수 있다.
MBTI 검사를 통해 총 16가지의 성격 중 나에게 해당하는 유형을 확인할 수 있듯이, 저마다의 기업가정신, 특히나, 위험감수성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금융기관에서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 가입을 권유할 때 위험감수형, 위험중립형, 위험회피형 등으로 고객 유형을 분류하고, 그에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것도 그 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부양할 가족이 생기며, 유지해야 할 자산까지 보유했다면(부의 정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위험 감수형 인간, 즉, 기업가정신이 높은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가능한 에너지양이 점차 줄어든다는 엔트로피의 자연법칙도 있지 않은가. 사람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나였다면, 딱 여기까지였을 거다. 가맹점주가 한 공간에서 판매할 수 있는 최대치의 먹거리 상품(반제품)을 제공하는 것.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여 법인의 설립까지 가능케 한 쏘크라테스 떡볶이를 기본으로, 후속 메뉴와 그에 걸맞은 브랜드를 개발하여 가맹점주에게 제공하고 홍보하는 것. 다행히, 떡볶이 외에도 냉면, 파스타, 닭발, 돼지국밥, 부대찌개, 주꾸미 등 10여 개의 후속 메뉴와 디자인 상표권까지도 확보하고 있다. 이 정도면 법인의 설립목적과 미션에 부합하는 R&D 기반의 FNB 브랜드 커머스 회사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혁신성과 진취성, 게다가 위험감수성까지 갖춘 청년 기업가는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소비자의 입맛은 까다롭고, 유행은 빠르게 변하며, 가성비 뛰어난 경쟁업체는 계속 생겨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맹점 증가세도 영원할 수는 없다. (실제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최초 버전의 돌우물 가맹점 수는 정체기에 들어섰다.)
기업이 성장하고, Scale-up 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의 주력제품(상품, 서비스 포함)이 안정적인 Cash Cow 역할을 하도록 관리해야 함은 물론, 새로운 아이템과 후속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개발하고, 투자해야 한다. 때로는, 기존의 사업 아이템을 포기하고, 사업의 방향을 전환(피봇팅) 해야 하기도 한다.
제일 좋은 건 하나의 상품(돌우물의 경우에는 쏘크라테스 떡볶이)이 메가 히트를 해서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다. 인지도가 오르고 매출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돈과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다. 매스컴을 통해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가 100개, 200개로 증가해 수십억, 수백억을 받고 브랜드(회사)를 매각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노력과 실력, 그리고 시대적 상황과 배경 등이 맞아야 하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의 흐름에 더해 운(運)까지 따라줘야 한다.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해, 아니,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회사의 비전과 미션, 세부전략에 따라 묵묵히 실행하고, 또, 수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외식업계 경쟁은 여전히 치열한 데다, 소형점포 창업유행과 배달시장의 호황기도 주춤해졌다. 어느새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의 시대, 즉, 포스트-코로나를 얘기했고, 사람 간 만남을 그리워했으며, 혼밥과 배달음식을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 회사의 외형은 커졌고, 직원 수는 늘어났다. 얼마 전 사무실도 강남으로 옮겼다(과감한 실행력이다).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판매관리비가 증가했다.
폼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한 법. 법인설립 1년 만에 20여 개의 브랜드, 100여 개의 Meal solution 상품과 메뉴를 개발한 실력이 이대로 묻힐 수는 없다. 위기 속에서도 사업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 일류다. 업의 본류(FNB)는 그대로 두더라도, 지류(주력메뉴)는 교체하거나, 변화를 꾀해야 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중식 메뉴, 짜장면이었다. 호불호가 적고, 폐업률이 낮으며, Post 코로나 시대에도 소비될 수 있는 스테디셀러. 중식당은 소자본 배달전문점도, 홀매장 소매점도 모두 가능하다. 우선, 메뉴가 완성되고 맛이 표준화되면, 법인 직영점을 내서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직영점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새로운 가맹점을 모집하고, 기존의 돌우물 가맹점주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바야흐로, 돌우물 2.0 버전이 태동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돌우물은 이제, 생존보다는 성장을 고민하는 기업 아니던가. 홍콩반점, 짬뽕지존을 넘어설 수 있다는 호연지기는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기까지는 시간의 담금질이 필요하고, 회사 내/외부의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회사가 보유한 유동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이자, 난제다. 기술력, 자금력,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면, 그게 어찌 중소기업이겠는가.
임 대표가 나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준 건 이즈음이었다. 회사 운영자금이 필요하다며,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는 문의였다. 이제, 나의 시간이 도래했다.